[군종] 사랑을 실천하는 삶/강은식 신부(부활 제6주일)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와 하나에서 열까지 많은 주의와 당부를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이제 성부의 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시면서 남겨지는 제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성령의 파견이야말로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힘이 되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교리에서 배우듯 성령은 하느님의 한 위격으로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부, 성자, 성령이 따로따로 존재하시어 전시대는 성부의 시대고 그 다음이 성자, 그리고 성령의 시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안에서 늘 우리 인간과 함께 생활해 오신 하느님의 구체적인 현현이 성자였다면, 성령은 우리 인간을 온전히 사랑하시는 그 성부와 성자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령파견 약속은 목숨까지 내 놓으시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읽고 실천하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스승이라 부르며 따르는 제자들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분의 능력만을 바라볼 뿐 그분의 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이 안타까우실 뿐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계명을 준수할 것을 재차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이 계명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황금율’이라고 잘 알고 있는 “한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마음을 느끼고 닮으려 노력하며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써 나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신자로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움직여진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문이 닫힌 건물 안에서는 밖에 바람이 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다른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간다는 증거 역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증명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단지 초월적 존재에게서 주술적인 힘을 얻고 초자연적 현상이나 기대하는 것이라면, 그 신앙은 인간에게 독이 될 뿐입니다. 오히려 신앙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뛰어넘어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끌어주는 힘이고 초이성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이러한 신앙을 산다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우리가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이 우리 안에 생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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