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나의 나약함은 하느님 아버지의 또 다른 강한 이름/김부민 신부(부활 제5주일)
오늘 복음에서 “나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나를 알면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 복음의 중심은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며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 아버지 사랑이 예수님의 삶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버지에 대하여 집착하여 찾고 계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알고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 17장에서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산 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은 이처럼 우리의 기준과 생각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 어떤 의미의 말씀입니까.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홀로 서거나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하늘의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고 다 맡기는 사랑이고 믿음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전부를 의탁하고 맡기는 믿음이 바로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그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을 따스하고 진실하게 품고 있는지요.
딕 호이트(Dick Hoyt)의 감동 실화를 쓴 ‘나는 아버지입니다.’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아들이 뇌성마비와 전신마비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아이를 포기하라는 주위의 강한 만류(挽留)에도 아버지는 절대로 불쌍한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심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달리고 싶어요.’라는 소원을 말합니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달리기 경주에 참가했으며 나중에는 정상인들도 감히 해내기 어려운 수영 3.9km, 자전거 180.2km, 마라톤 42.195km의 철인 3종 경기까지 완주해냈습니다. 그 후에도 강한 아버지와 나약한 아들의 놀라운 도전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에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사랑을 그토록 강하고 무한하게 만들었던 힘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아들의 그 나약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하고 온통 아버지를 찾으셨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예수님 당신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강하고 무한한 사랑을 찾으며 의지하고 계셨습니다. 강한 아버지와 나약한 아들이 비로소 하나로 일치를 이루었을 때 크고 놀라운 사랑의 힘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믿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성당의 느티나무에는 초록의 잎사귀들이 새롭게 돋아났습니다. 햇살에 빛나는 새로운 초록의 잎사귀들이 이렇게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하늘이 주는 대로 인정하며 잘 받아들이라고….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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