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⑳ 부산 해운대구 좌동 '양푼이 구포국수

松竹/김철이 2011. 5. 18. 12:19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⑳ 부산 해운대구 좌동 '양푼이 구포국수'

  •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부산 최고급 일식집 주인장이 운영하는 1,500원짜리 국수집의 미덕

부산 웨스틴조선호텔과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 있는 쿠로마츠(黒松)는 부산광역시에서는 최고급 일식집으로 알려졌다. 이 두 곳의 주인은 김주영 대표다. 그런데 그가 2010년 7월, 뜬금없이 해운대에 1,500원짜리 국숫집을 열자 주변 지인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최고급 일식당 사장님이 '1,500원 국숫집'을 차린 까닭은?

처음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연유를 묻자 짧고 쿨하게 대답했다. ‘공부를 못해서 대학을 못 갔기 때문’이라고. 고교 졸업 후 김씨는 잠시 미용학원에 다니며 미용을 배웠다. 본인 손재주도 있었고 실력도 웬만큼 인정받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여성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교시절부터 흥미를 느꼈던 요리 쪽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요리학원을 나와 곧바로 일류 호텔 주방에 사회의 첫발을 디뎠다. 20대와 30대 청년시절을 호텔 주방에서 보냈더니 어느덧 ‘요리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호텔 주방을 나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요리학원을 열었다. 약 3~4년 정도 후진양성에 주력하던 중 다시 호텔 측의 간곡한 요청으로 주방에 복귀하였다.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 ·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개최로 호텔의 고급요리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개인 일식당을 차리고 사업도 순조로웠다. 요리사로서도 사업가로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 하지만 왠지 모를 허기가 느껴졌다. 

"지나간 제 요리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30년 동안 제가 만든 요리는 우리나라 5% 분들을 위한 요리였어요. 그래서 늘 95% 고객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요리사 생활을 마감하기 전에 내가 만든 음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늘 있었지요."

그가 국숫집을 열자 ‘일식당을 너무 크게 하다 망해서 결국 국수장사로 나섰다’는 등 주변에서 별 소문이 다 돌았다. 그런가 하면 ‘1,500원짜리 국수가 오죽하겠어!’ 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많아 처음 개점한 날에 50그릇밖에 못 팔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 맛을 본 이 50그릇의 주인공들이 식구나 아는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고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한 달 만에 이 식당의 하루 최대 판매 한계치인 500그릇을 돌파했다. 조금 무리를 하면 550~600그릇까지도 가능했다.

양푼이멸치국수와 비빔국수

진한 멸치 국물과 먹을수록 당기는 비빔국수 양념 맛

이 집의 국수 맛은 아낌없이 넣은 멸치의 진한 국물 맛에서 나온다. 경남 고성군에서 직거래하는 멸치를 다른 국숫집에 비해 두 배 정도 더 많이 넣는다. 그 외에 넣는 식재료는 없다. 맛을 내기 위해 잔재주를 피우고 싶지 않다는 김씨의 요리 철학이 깃든 국물이다. 국물을 먹어보니 역시 진했다. 김씨는 좋은 국수 국물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멸치를 충분히 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물론 비용은 다른 방법보다 많이 드는 편이다.

부산에서 제일가는 소면

이 국물에 부산에서 제일가는 소면을 넣고 굵은 소금과 오래 묵은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 것이 양푼이멸치국수(1,500원)다. 고명도 시금치나 배추에 김가루를 얹은 게 전부다. 그런데 먹어보면 깊은 맛이 살아있다.

상추와 오이채를 썰어 넣고 매콤 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비벼먹는 비빔국수(2,000원)도 입맛을 당긴다. ‘국수 배는 따로 있다’는 말이 있지만, 대여섯 가지 국수를 먹어 배가 빵빵한데도 비빔국수 한 그릇을 다 먹고 동료 몫까지도 힐끔거렸다. 비빔국수는 양념맛이 좌우하긴 하지만, 이 지방에서 60년 동안 사랑받아왔다는 전통 있는 국수 면발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당근을 비롯한 채소와 오징어를 넣고 얼큰한 맛이 나는 비빔당면(2,500원)과 부산의 명물인 어묵을 넣은 어묵국수(2,500원)는 따끈할 때 먹으면 그만이다. 묵을 넣은 묵국수(3,000원)도 특유의 묵직한 맛으로 출출함을 확실하게 날려버린다. 이 밖에 여름철 계절 메뉴로 냉국수(2,000원)와 냉콩국수(3,000원)가 있고 회국수(3,000원)도 준비되어 있다. 국수 메뉴 외에 세 개에 1,000원씩 하는 유정란인 초란과 손만두(5개 2,000원)도 별식으로 괜찮다. 이들 메뉴 하나하나 모두 부산에서 최고 고급호텔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쿠로마츠>의 주인이자 셰프인 김씨의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손만두

때 절은 1천 원 권 지폐에 감사, 저소득층 부부창업 기술 전수 계획도

영업을 끝내고 정산하기 위해 돈을 꺼내보면 대부분 1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이 나온다. 1만 원권 이상의 고액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1천 원짜리 지폐도 성한 것은 드물다. 꼬깃꼬깃 네댓 번 접었다 편 자국이 있거나 묵은 손때에 절어있는 것들이 대부분.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린 학생들이 국수 값으로 낸 돈이다. 이 돈들을 정리할 때면 김씨 마음도 뿌듯해진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식당과 내 음식을 찾아준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과 행복감이 뒤따른다고 한다.

김주영 대표

돈의 액수로 따지면 하루 종일 국수 판 돈이 호텔 일식당 한 테이블의 매상액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쟁이나 호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나왔을 그 돈들의 가치와 의미는 푹 우려낸 국수 국물만큼이나 진하다. 주인장 김씨가 이 점을 잘 알기에 소면과 멸치 값이 많이 올라 식당 운영에 어려움이 있지만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그는 쫀득하고 기다란 구포국수 면발처럼 이 식당과 국수를 통해 더 많은 이웃과 오래 소통하고 싶어 한다.

김씨는 국수로 창업을 하고자 하는 저소득층 부부창업자에게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 전수를 무료로 해줄 생각이다. 자본과 기술은 없지만 성실성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 충만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한다. 하루 종일 내리는 봄비가 국숫집을 나설 때까지도 그치질 않는다. 그래도 손님들이 우산을 접으며 꾸준히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폭우에 가까운 심술궂은 봄비도 주인장 김씨와 저 손님들 사이에 이어진 국수 인연을 쉽게 끊어놓진 못할 것 같다. 051) 701-9455

 

 

출처: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