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인천] 엠마오의 제자들

松竹/김철이 2011. 5. 7. 21:17

[인천] 엠마오의 제자들/김덕원 신부(부활 제3주일)

 

 

기도란 무엇일까? 수많은 신학자들의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기도는 대화’라는 정의를 좋아합니다. 대화란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대화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을 붙이십니다. 이제 대화는 기도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지만 내용은 하느님 나라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처음부터 알아듣지 못한 것이 그것이었고, 베드로와 처음 만날 때는 깊은 곳에 그물을 치자며 매우 낯선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생명의 빵에 대해 말씀하실 때 수많은 제자들이 듣기 거북해하며 되돌아가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기도는 불명료한 대화이며 낯선 방식이기에 불편함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지가 매우 중요하며 더불어 이성과 기억도 중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따라 나섰던 제자들의 고충이 바로 우리가 기도 안에서 겪는 고충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언어에 점차 익숙해지면(머무른다고 표현되기도 함) 우리의 기도는 점차 변화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통을 버리고는 자신이 숨기고자 했던 사실을 온 동네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자유로워지고, 가득 담긴 그물의 고기를 보면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라고 했던 제자가 천국의 열쇠를 받아드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랑이 없고 메마르며 숨기고 피하고 또 정복하려들던 거친 삶의 방식에서 놀랍게도 자유로워진 영혼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수난 이전에 당신을 만나 이들에게 부활을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은 그것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 곁에서 성경 말씀을 풀이해 주셨고, 또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당신 몸의 부활을 체험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와 미사 안에서 이미 주님으로부터 받는 은총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따라서 기도의 출발은 불편함을 전제로 하지만, 결론은 부활을 희망하며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부활은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토마스 머튼의 말처럼 기도의 중요한 자리인 묵상은 ‘자리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저절로 풀릴 때까지 또는 삶이 풀어줄 때까지 문제를 자기 안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