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사랑을 증명해내고 싶으십니까?/이우진 신부(부활 제2주일)
누구나 때때로 다치곤 합니다. 다쳤을 때에도 그렇지만,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상처가 난 곳을 건드려야 할 때면 그 고통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검도를 조금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치렁치렁한 검도복을 입고 내달리다가 검도복에 발이 걸려서 아주 제대로 넘어졌지요. 검도복이 찢어지고 피가 묻어서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양쪽 무릎도 그렇지만 특히 팔꿈치 옆쪽의 부드러운 살점이 깊이 패여 많이 고생했었습니다. 몇 바늘 꿰매야 빨리 치료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겁을 먹었던 저는 그냥 치료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매번 소독하고 약을 바를 때마다 그 쓰라린 아픔에 몸서리치곤 하였지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묵상을 하는 내내 토마스 사도의 이 말이 귀에 아른거렸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이렇게까지 확인하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이렇게라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라고 헤아려보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참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확인시켜주고자 하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당신의 피조물인 우리들에게 전하고자했던 하느님의 사랑이 이런 것인가 헤아려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 육적으로 살아계신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납니다. 특히나 예수님의 희생제물로서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하신 사건에서 그 사랑이 정점에 도달합니다. 그 분의 말씀과 행위와 그 삶으로 온전히 드러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우리는 손에 쥐어지는 무엇을 통해서 확인시켜달라고 증명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도대체 더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이 완전히 증명되어지고 확인되어지게 될까요? 예수님의 그 답답해하시는 마음이 전해져오는 듯합니다. 그저 그 아픈 상처를 내어주시며 이 사랑을 믿어달라는 호소가 메아리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은 증명되거나 확인되는 것이 아니지요. 온전한 믿음과 그 사랑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은 그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을 통해서 헤아리고 느끼며 믿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담겨서 드러날 때,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그 크신 사랑을 다 담기에 부족합니다. 무엇으로 그 크신 사랑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지요.
하느님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 받고 싶으십니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놓으신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십니까?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증명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육적인 것 물질적인 것 세상적인 것에만 억매여서는 더욱 확인되기 어려워집니다.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헤아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다가서게 될 때,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랑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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