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서울]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이가 더 행복하다

松竹/김철이 2011. 4. 30. 08:37

[서울]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이가 더 행복하다/고준석 신부(부활 제2주일)

 

어제의 복음(마르 16,9-15 참조)은 예수님 부활의 목격자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말을 듣고도 제자들은 그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 역시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토마스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토마스는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아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토마스는 말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확실한 것을 찾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신앙이 흔들릴 때 혹은 확신이 안설 때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토마스야…” 하고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혹은 성모님께서 나에게도 직접 발현하셔서 이러저러한 말씀을 내려주시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혹은 성모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시면 정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열심히 따를 텐데…”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께서는 꿈에서도 잘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쾰른 땅에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 동굴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누가 이 글을 썼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글을 쓴 사람이 얼마나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둡고 습기 찬 동굴 속에서도 이 사람의 눈은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마음은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에 차 있었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안 계신 듯 침묵만이 흐르는 절망과 공포 속에서도 이 사람의 믿음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걸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에 대해 확실함을 얻길 원합니다. 그래서 사적 계시의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직접 눈으로 보고 목격한 체험은 아니지만 2000년의 역사 안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전승을 토대로 이루어진 신앙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신앙이요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이가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