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꿀단지

물위를 걷는 사람

松竹/김철이 2010. 7. 7. 00:35

물위를 걷는 사람

제자들이 잠든 새벽녘,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 오셨다.
그 모습에 놀라 누군가 소리질렀다.

유령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기적의 음식을 먹은 것이
어저께의 일이었다.
그런 그들이 스승을 못 알아본 것이다.

당황하는 그들을 예수님은 안심시킨다.
나다 겁낼 것 없다.
낮 익은 목소리에 베드로는 확인을 시도한다.

주님이십니까.
그렇다면 저더러 물위를 걸어 오라 하십시오.
당돌한 부탁이었다.

그렇지만 스승은 받아주신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조금 가다 빠지고 만다.
무모함이 기적을 받아들일 순 없었던 것이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베드로의 외침은 자신의 잘못을 실토하는 고백이다.
준비 없이 기적 앞에 나섰음을 뉘우치는 목소리다.

예수님의 답변은 따뜻했다.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단 말이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베드로와
그를 바라보는 인자한 눈길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 가셨다.
하느님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처음엔 걸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자 겁을 먹었고 결국 물에 빠졌다.
너무 쉽게 하느님의 기운을 의심했던 것이다.

누구나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면 물위를 걸을 수 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
위험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도
하느님의 기운을 지니면 해 낼 수 있다.
이것이 복음의 교훈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힘을 지니는 것인가.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주님의 기운을 모시려면 일차적으로 의심을 버려야한다.
자유롭게 믿어야한다.
사람 사이의 우정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믿음 안의 의심은 자해행위다.
의심에서 자유스러워야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어떤 물을 건널 것인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건너 가야할 물은 어디 있는가.
그 물이 무엇이든 예수님은 먼저 걸어 오셨다.
유령이라고 소리쳤지만 예수님은 걸어 오셨다.
이제는 우리가 걸어갈 차례다.

그 물은 가족 간의 관계일수 있다.
이웃과의 관계일수 있다.
사업이나 건강의 문제, 금전과 직장의 문제일 수 있다.
어떻든 미래와 연관된 문제들이다.

모든 관계의 원인이 주님이심을 고백해야한다.
그분의 섭리 안에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물을 건너는 첫 행위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지금 물위를 걷고 있다면 그분께 의지해야한다.

믿음은 산을 옮긴다고 했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믿는 자에겐 그보다 더한 것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자.
산을 옮기고 물 위를 걷는 것 보다 더 놀라운 일을 주님께서는 하셨다.
그냥 우연이 된 것이 아니었다.

덮어두고 살아서 되겠는가.
감사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믿고 신뢰하는 생활이 감사의 생활이다.

당신이 주님이십니까.
그러면 저더러 물위를 걷게 하십시오.
누구나 살면서 이 말을 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믿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세상은 속인다.
억울하게 손해본 사람들은 어디든 있다.
은총의 도움 없이 어떻게 믿음의 길을 편히 갈 수 있겠는가.

신앙인은 물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기운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빠지지 않는다.

[신은근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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