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심각한 고독
현대인의 심각한 고독과 그 고독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여기서 정말 이러한 상황이 변화될 수 없고 회복될 수 없는지,
아니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싸르트르 철학의 이른바 실존적 분석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즉, 일상적인 진부한 생활에서 벗어나서 자기의식을 갖는 사람만이 스스로 외롭고
던져진 존재라는 것을 의식할 수 있다.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불행의식'과 같은 의미라고 불 수 있다.
타인과의 정신적 결합을 실현시킬 능력이 전연 없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타인과의 정신적 결합의 실현은 모든 인간의 행복조건인 것이다.
사랑, 우정 그리도 동지애는 인간이 자신의 본래의 고독을 감수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해서
자포자기 때문에 생기는 자기기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싸르트르의 철학 및 문학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하나의 관점은 인간이란
원래 감당할 수 없는 고독으로부터 벗아날 능력이 선천적으로 없다는 것이며,
다른 관점은 그에게 있어서 모두 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같은 내용을 다만 문학적인 경험이나 또는 싸르트르 개인의 노이로제적 경험으로
연관지울 뿐이라면, 그것은 싸르트르의 비관론이 지나치게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싸르트르가 그의 견해를 전파한 많은 작가들과 현대의 다수의 젊은이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는 것은 다름아니라, 그의 실존적 경험이 그들의 경험과 일치했기 때문인 것이다.
싸르트르는 확실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대변자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인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고,그때문에 불행하다고 하는 철학을 결코
인간의 모든 경험에 대해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의 직접, 간접의 실존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적어도 싸르트르의 철학이 인간의 모든 상황을
해명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는, 나는 싸르트르의 비관론의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타인과의 만남 자체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본다.
이러한 만남은 물론 어느 경우에는 환상이나 실망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자기의 삶과
인간의 운명을 충족시킬 수 있는 큰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유감스럽게 항상 그렇게 되지 않고, 또 특히 오늘날 타인과의 만남이 진정한 사귐이 되지 않더라도,
결코 본질적으로 고독한 개별적인 인간 사이의 우정은 불가능하다는 관점으로 그 이유를
돌려서는 안된다. 오히려 현대인의 인간성이 심리적, 사회적 조건에서,
그리고 그들의 지적 발달과 정서적 발달의 불균형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익냐스 렙 지음, 유도진 옮김 '우정의 심리학'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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