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이재상 보나벤투라 신부님(예수회)
비유 속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사실 좋은 씨를 보살 피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보살피는 열정은 가라지와 얽힌 뿌리까지 내려가고 있습니다.
좋은 씨의 여린 뿌리를 보살피는 길이 가라지를 놓아 두는 것이라니 분명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요새라면 제초 제도 있고, 손으로 손수 뽑는 방법도 분명 있을 터인데 비 유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속마음은 그냥 놓아두는 것이 최 선이라 생각하시는 쪽 같습니다.
가라지를 놓아두면 밭은 가라지로 더욱더 뒤덮일 터이 고, 수확은 보잘것없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라면 소출에 해가 되는 것이 있을때, 일찌감치 뽑아 놓는 게 효율과 효과의 측면에서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 각할 것입니다. 중환자를 치료하는 외과의사는 환자의 몸 에서 썩은 부위를 발견한다면 보통 그 썩은 부위를 도려 낼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래야 환자의 건강이 지켜지는 법일 터인데, 복음은 아무리 읽고 또 읽어 보더라도 그런 것들을 잘라내고 뽑아내고 도려내라 가르치지 않습니다.
가라지를 내버려두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수확에 영향 을 미치고 눈에 거슬리는 가라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 라, 땅속뿌리를 통해 여리게 올라오고 있는 단 하나의 밀 이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소출을 내야 하는 농부가 아니라 지금 저기 살아있는 작물을 사랑하는 사람 인 것입니다.
가라지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불태워야 할 것이 없 다는 것도 아니고, 끔찍한 악이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 들을 제거하려다 사람의 가장 작은 잔털조차 건드릴까 걱 정하는 철저한 ‘복음적 비효율’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주 작은 것조차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을 이 비유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숨만 쉬어도 상처받는 우 리는 그런 주님의 섬세한 배려에 코끝이 찡한 감동을 받 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비유를 읽으며 세상에 의해 가해 지는 폭압 앞에서 우리의 무가치하고 허무한 마음을 인지 할 때마다, ‘도대체 아무것도 안 하시는 하느님’이라며 경 멸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탓하기도 합니다.
‘이 불의의 세상에 당신은 무엇을 하는 분이십니까?’라 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정확하게 포착되지 않는 정체불명 의 존재. 굳이 대답하신다면 ‘난 저기 있는 저 작은 이를 사랑하는 존재야!’라고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하실 것 같은 정체불명의 존재. 그 정체불명의 존재를 따르고 있는 우 리 역시 삶의 목표가 어떤 소출을 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 가를 사랑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존재이면 좋겠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이것이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임 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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