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으로 기뻐하시기를
이제 마지막 글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 동안 귀한 지면을 통해 여러분과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 다. 인사를 많이 들어서 주보의 위력을 깨달았습니다. 얼 마나 살가운 자매와 형제분들이 많이 계시던지요. 언젠 가 어느 신부님께서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들은 자기 종 교를 숨기는 경향이 있는데 작가님은 그러지 않으시는군 요.”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많은 이들이 종교를 아주 개 인적인 영역으로 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세례 받을 때는 세례받는 기쁨이 커서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일 상이라서 종교적 일상을 사람들과 공유해왔지요. 다만 그 런 마음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세례받은 이의 ‘천진 한’ 기쁨을 보고 ‘쉬는 교우’들이 성당 생활을 다시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요.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의 엄숙주의를 이야기합니다. 동 의합니다. 예비 신자 모집 때 성당 어른께 들은 첫 말이 “천주교는… 사실 너무 장례식 분위기야.”였을 정도였죠. 성당 강의실에서 작은 과일을 집어 먹고 있던 저는 풋 웃 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저의 부담을 완전히 내려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성실히 성당 생활을 해 오신 분이기에 그런 위트로 제 긴장을 풀어줄 여유도 있 으셨던 것이죠. 믿는 것과 맹목적인 것은 다릅니다. 인간 들이 모여 있는 교회는 얼마든지 평가와 논란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적막한 평화보다는 소란스러운 갈등을 예수님은 더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라고 하셨겠지요.
이후 그리스도교에 대해 새롭게 각성할 기회가 또 있 었습니다. 어느 날 신부님이 기도 후에 주어질 복, 혹은 상에만 관심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드리는 미사는 굿판 이나 다름없고 당신 자신도 무당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때의 신부님은 단호하고 한편으로는 슬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들이 현세의 것들 일 뿐이라면 그렇습니다. 평생 기도와 소명 속에 살아가 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모욕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 다. 그분들의 하루하루의 희생이 나의 승진과 돈과 취업 과 아파트 입주를 위해 존재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죄스러 울 일 아닐까요. 저는 ‘보편 교회’가 무엇인지 그제야 생각 했고 우리의 지향이 더 높은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으로서 의 자세를요.
어려서부터 저는 ‘죽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 였습니다. 하지만 성당을 다닌 시간들이 저를 점점 빛 쪽 으로 이끌었습니다. 주님이 모든 이를 사랑하시니 저도 특별히 제 일신의 향방을 위해 이리저리 고민하지 않아도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요?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구원의 자리로 이끌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부디 기뻐하 세요. 내내 ‘믿는 사람’으로 살아갈 우리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말입니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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