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기도
지금은 이사를 왔지만 이전 아파트에서는 이팝나무를 가깝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나무가 눈에 들어온 건 비둘기들 덕분이었습니다. 날갯짓을 하며 가지 위를 헤치 고 다니며 먹이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비둘기라고 해서 인간이 버린 음식들에만 관심 가질 리 없지요. 있기 에 먹는 것이지 아마 우리보다 더 눈 밝게 자연의 것들을 찾아 즐기고 향유하고 있을 겁니다.
그 집 아래층에는 통성 기도를 매일같이 하는 이웃이 살았습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알게 되었지요. 알아 들을 수 없는 방언과 혀와 입술을 빠르게 움직여내는 소 리로 이루어진 생경한 기도 소리였습니다. 다행이라면 침 실에서만 들린다는 점이었죠. 불행이라면 여러 가지 부정 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섭기도 하 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어떤 무지함와 맹목으로 느껴 지기도 했습니다. 이래서 “종교는 안 돼.”라고 생각했지 요. 그때 저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항의하지 않고 참은 건 그 집에 아픈 사람이 있 다는 것을 알아서였습니다. 입주 청소를 하던 날, 경비실 에 신고가 들어가서 곤혹을 치렀는데 그 집의 딸이 항의 한 것이었습니다. 공사도 아니고 이 정도도 못 받아주나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삿날 엘리베 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이 “우리 애가 좀 아파요.”라고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이웃끼리 그쯤은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교육을 시켰어요.” 물론 저도 사과를 드렸지요. 그 런데 통성 기도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그 순간 화해의 의 미를 잃어갔습니다. 기도 소리 정도는 이해하라는 은근한 암시가 아니었을까. 그때만 해도 제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예비 신자 시절 묵주기도를 처음 배웠습니다. 저는 무 엇보다 기도가 매번의 반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 랐지요. 마리아님과 함께하는 묵주기도는 더욱 간명하고 긴 시간 반복되는 문장으로 되어 있었죠. 집으로 돌아와 배운 대로 묵주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숙제로 하다 보니 점점 꾀가 났습니다. 속도를 올려 ‘후딱’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어느 날 가족들이 불평했습니다. “기도 같지 않고 되게 못하는 랩처럼 들려.”
그 집을 떠나기 전날에도 통성 기도가 들려왔습니다. 아픈 아이와 ‘좀’ 아픈 아이는 많이 다르지요. 그 축약어 에는 채 설명할 수 없는 당사자의 난감함과 어려움이 담 겨 있습니다. 저는 그 이웃과는 좀 다른 기도를 하는 사람 이 되었지만 어쩌면 그 과정에 이웃의 기도 소리가 어떤 작용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같은 기도하는 존재이죠. 같은 이팝나무 가지 위로 내려 앉은 비둘기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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