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는 여전히 무 겁게 느껴집니다. 사회는 새것과 젊음을 우선하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도 나이든 사람을 환영하지 않으니 나이와 함 께 불안이 커지죠. 이렇다 보니 십 대 시절을 얌전하게 보 낸 사람도 마흔 즈음이 되면 흔들리고 방황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마흔 초반에 ‘진짜 사춘기’를 겪었어요. 살아 온 세월은 제법 되고 살 날도 꽤 남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살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도 지금처럼 살면 돼?’라는 질문 앞에 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땐 근본에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하던 것을 계속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죠. 허나, 브레이크 가 걸리고 비상음이 울리면 비로소 돌아봅니다. ‘이대로 괜찮은가. 바꾼다면 뭘 바꾸나.’ 마흔 무렵, 저는 제 인생 의 근본을 들여다봤고 그런 끝에 일 년 휴직을 하고 ‘방황 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순례를 떠났죠.
비행기와 기차를 갈아타며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 Saint-Jean-Pied-de-Port)로 갔고 거기서부터 꼬박 35일을 걸 어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닿았습니다. 대성당에 도착한 날 미사에서 신부님이 “오늘 아침 꼬레아노 한 사 람이 이곳에 당도했다.”고 말씀하실 때 얼마나 감격스럽 던지요. 결국 800킬로미터를 다 걸어 산티아고에 닿았지 만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는 알지 못한 채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리스도인도 아니었으니 순수한 순례도 아니었습 니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는데 순례 중에 지극 한 사랑을 체험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카미노를 걷기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났을 때였습니 다. 마을 성당에 가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봇물 터 지듯 났습니다. 눈물도 못 닦고 한참 우는 사이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이 말씀을 들려주시려 고 나를 부르셨구나.’ 마흔 넘어 맞닥뜨린 불안에 무릎 꿇 고 싶지 않아서 순례길에 나선 거라 짐작했는데 주님의 뜻은 그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고 하죠. 얼굴에서 빛이 나고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누군가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는 사실이 자신감을 주니까요. 하물며 저는 하느님으로 부터 사랑 고백을 받았잖아요? 강력한 ‘빽’을 확인한 저는 그 음성에 기대어 마흔의 사춘기를 무사히 지날 수 있었 습니다.
‘목소리’를 들은 순간이 어제와 같은데 벌써 20년이 되 었네요. 그분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확인했음에도 ‘시간의 이빨’ 앞에서 저는 또다시 걱정하고 방황합니다. 이를 넘 어서는 방법은 부지런히 기도하고 말씀을 새기며 행하는 것이겠지요. 방법을 알면서도 행동이 적어 탈인데 그럴수 록 Just do it! 사랑을 믿고 한 발 내딛는 것. 그리고 계속 걷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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