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자비, 상처와 상처가 맞닿는 자리
김원호 바오로 신부님(등촌3동 주임)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오늘 복음 말 씀을 통해 자비하신 주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됩니 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 마스는 하필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주님을 뵙 고 감격에 젖어 있을 때, 홀로 그 기쁨에서 소외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왜 하필 나만 없을 때 오셨을까?’ 하는 서운함과 오해는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라는 한맺힌 절규 로 변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불신이라기보다, 주님의 사 랑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시어 말씀하십 니다.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 심을 버리고 믿어라.”(20,27) 이 말씀은 토마스의 불신에 대 한 질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아픔을 통해 그 의 오해와 아픔을 치유하시려는 자비의 말씀이었던 것입 니다. 주님의 상처 앞에서 토마스는 비로소 모든 오해를 씻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0,28)이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예전에 안동교구 강구성당에서 사목했던 적이 있 습니다. 성 토마스 사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작은 시 골 성당의 성전 문고리는 예수님의 깊은 상처를 만지고 있는 토마스의 손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그 문고리 를 밀어 성전 문을 열고 제대를 차리며 신자분들을 맞이 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오늘 복음을 묵 상하다 보니 예수님의 상처 위에 저의 손을 포개어 문을 열던 그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사랑하는 신자분들과의 만 남은 주님의 자비를 매일같이 체험하는 순간이었음을 이 제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늘 우리를 향한 ‘사랑과 연민’이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우리의 상처 안으로 직 접 들어오시는 ‘투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누군가 우리 에게 마음을 열 때, 멋지고 화려한 모습이 아닌 가장 아픈 곳을 먼저 내보이듯,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영광보다는 부 서진 상처를 먼저 내어주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 리가 주님의 고통을 알아주길 원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아픔에 들어와 함께하고 있음 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누 구의 상처에 손을 포개고 있느냐?” 주님께서는 당신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투신’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러 셨듯 나의 아픔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 앞에, 그리고 아파하는 이웃 앞에 내어놓고 서로의 상처가 맞닿는 곳에 서 이루어지는 치유하고 치유받는 자비로운 경험을 하길 원하십니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나 의 자비이시며,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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