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의심에도 자비로이 우리를 찾으시는 주님
한재승 요아킴 신부님 (평화동성당)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더 빠르게 세상이 변합 니다. 특히 AI, 곧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정보의 집약 체 혹은 덩어리가 마치 사람처럼 여겨지고 있는 시대 가 되었습니다. 편리한 점도 많습니다. 무언가 사려고 하면, 검색했던 것을 모아 물건을 추천하는 광고를 보 여줍니다. 영화를 보려고 하면 평소에 시청했던 영상 들을 정리하여 즐겨 찾는 장르와 비슷한 내용의 영화 를 소개해 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익숙해 져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것, 좋아 보이는 것들이 인 터넷에 가득 올라옵니다. 가짜든 진짜든 더 이상 중요 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됩니다. 자기 마음에 들고 자신의 편이 되는 이야기만 보고 듣습니다. 알고리즘이 점점 더 그렇게 자기 안에 갇히도록 만들고, 이에 따라 세상도 내 편 아니면 네 편으로 갈라져 갑니다. 듣고 싶은 말, 보고 싶은 것만 을 듣고 보고 찾습니다. 어쩌면 토마스의 마음이 오늘 날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지 않았을까 묵상해 봅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 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국 믿지 못하겠소”(요한 20, 25).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고 전하지만, 토마스는 믿 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겪고 자신의 생 각에 맞아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가 믿지 않은 이유는 그가 나빠서나 믿음이 부족해서였 을까요? 아닙니다. 실패에 대한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 까요?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고 따라나서서 희망했던 것이 있지만, 십자가 죽음을 보게 되었고, 마음도 무 너지고 두려워서 숨게 되었습니다. 이제 쉽게 믿고 싶 지 않고 실망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픔이 싫어서 좋아 보이는 것만 찾고 남들에게 그 저 좋아 보이려 하고, 선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알고 리즘과 인공지능이 건네주는 것만 듣고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들었 고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 다. 또 그분이 죽은 뒤에 부활하셨다. 그런데도 우리 는 믿지 못하고 조건들을 달곤 합니다. 내 삶이 좋아 지면, 형편 좀 괜찮아지면, 병이 나으면, 자식 문제가 풀리면, 시험 잘 보면, 성당에 가겠습니다. 기도 열심 히 하겠습니다. 달리 말하면, 직접 보고 손을 넣어 보 고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토마스는 어쩌면 우리를 대신해서 말해 준 사람입 니다. 그런데 토마스의 의심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문을 닫 아걸어 문이 다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 셔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6)
예수님께서는 왜 믿지 못하느냐라고 먼저 꾸짖지 않고 평화부터 주십니다. 먼저 다가오시어 상처를 보 여주시고 손을 넣어 보게 하신 후 말씀하십니다. “그 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부활 제2주일,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 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저 자신의 생각대로 의 부활을 기대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어서 아 직 부활을 참으로 기쁘게 지내지 못하고, 주님을 뵙지 못한 채 세상에 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찾 아오시고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먼저 우 리 가운데로 오시어 평화를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 니다. 이 주님의 자비를 되새길 때 “믿고 그분의 이름 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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