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단상 | 병자성사
어느 토요일 저녁, 일과를 마치고 본당으로 파견 와 있던 신학생과 맥주 한잔을 하고 있을 때 전 화가 옵니다. 지금 빨리 병자성사 좀 주실 수 있냐는 전화입니다. 장소는 강원대병원. 이미 맥 주 두 잔째를 마시고 있던 터라 급히 운전해 줄 봉사자를 구해 춘천으로 향합니다. 춘천 시내에 들어 가 강원대학교 후문 쪽으로 가던 중 다시 전화가 걸려 옵니다. 돌아가셨다고….
금요일 저녁 볼일이 있어 서울에 가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이번에도 지금 빨리 병자성사를 달라는 전화입니다. 보통 서울에 갈 때는 대중교통으로 가는데, 다행히 그날은 사 와야 하는 물건들이 있어 차를 가지고 간 터라 곧바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밤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거의 없어 제 차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을 내며 달린 덕분에 선종하시기 직전 병원에 도착하는 데 성공합니다. 대중교통이 었거나 고속도로에 차가 조금만 더 있는 시간대였다면 이번에도 늦었을 겁니다.
목요일 이른 아침, 모처럼 오전 일정이 없어 전날 신부들과 술 한잔하고 늦잠을 자려고 했던 때 다 시 전화가 옵니다. 지금 빨리 병자성사를 달라는 전화입니다. 장소는 건국대학교 병원. 운전할 봉사 자를 찾고 출발 준비를 하는 데 다시 전화가 옵니다. 돌아가셨다고….
병자성사를 청하는 연락의 80% 이상이 늘 이런 식입니다. “언제 드리면 되나요?” “지금 당장이요 (그리고 대부분 연락 온 지 한두 시간 내에 돌아가십니다).” “어디에 계신다고요?” “춘천이나 서울의 어느 병 원이요.” 저는 119 구급대원처럼 24시간 즉시 출동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고, 막힌 길을 사 이렌 울리며 뚫고 갈 수도 없으며, 헬기를 타고 한 시간 내로 어디든 날아갈 수는 더욱 없습니다.
지난 설 명절을 앞둔 주일, 공지 사항 시간에 전체 신자분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병자성사에 대한 교육을 하였습니다. 제발 의사가 가망 없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의식이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미리 청하셔라. 본인이 직접 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자녀들에게 꼭 이야기해 두셔라.
병자성사 지침은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병세가 얼마나 깊은지 판단해야 할 때에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 개연성을 신중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있으면 수술받기 전에 거룩한 도유를 받을 수 있다. 노쇠 하여 기력이 많이 떨어진 노인들은 병세가 위중해 보이지 않더라도 거룩한 도유를 받을 수 있다.” “세례를 받은 신자로서 성체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노자 성체를 받을 의무가 있다. 왜냐 하면 모든 신자는 어떤 이유로든 죽을 위험에 놓였을 때 영성체하라는 규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아직 온전한 의식이 있을 때에 노자 성체로 힘을 얻을 수 있도 록 이 성사의 집전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어버이날이나 세계 노인의 날 같은 때 어차피 대부분의 신자분이 노쇠까지는 아니어도 노인이시긴 하니 단체로 병자성사를 받게 해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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