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안에서 너를 만나면
“날 위해 기도해 줄래?”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친구 의 한마디로 길었던 저의 냉담이 끝났습니다. 건강에 이상 이 생겼고 예후가 좋지 않지만 잘 치료하겠다고 했습니다. 흉금을 털어놓는 사이였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속상하고 힘들었던 일, 아이를 키우면서 웃고 울었던 시간들, 앞으로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속닥거렸던 것 이 불과 며칠 전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성당으로 향했습니 다. 고해성사에서 말을 잇지 못하는 제게 주임 신부님께서 는 친구를 위한 기도를 보속으로 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 에 비해 기도는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는 데 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 친정어머니가 주셨던 9일 기도서 를 발견하고 그날부터 54일 동안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마가목 하얀 꽃이 바람에 살랑거릴 때 둘이서 여의도 공원을 걸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은 더운지 옷소 매를 걷어 올렸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환하 게 웃으며 무리를 앞서가던 아이를 보다가 친구가 말했습 니다. “이제야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된 것 같아. 그 동안 내가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했는데 모든 게 달라졌어. 하느님이 널 사랑하신다는 걸 잊지 마.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친구는 하느님께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냈 습니다. 기도로 고통을 견디고 의연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저의 신앙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 적인 믿음도 약했고, 예수님의 일생을 알려고 하지도 않 았고, 오로지 아쉽고 필요할 때만 찾던 이기적인 믿음이 었습니다. 더 이상 무늬만 신자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 었을 때 성서 모임반을 모집한다는 사내 공지를 보고 용 기를 냈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 지금은 마태오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하는 구절에 생각이 머뭅니다. 기도할 때 막막하고 답답했던 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았습니 다. 동료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신앙을 나누는 시간이 쌓 일수록 어렵기만 했던 기도가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낍니 다. 출근길 집을 나서며 파란 하늘을 볼 때, 보도블록 사 이에 자리 잡은 작고 여린 풀을 볼 때, 눈을 감고 숨을 깊 게 들이마실 때 주님이 함께하심을 알아차리고 짧게 기도 합니다. 또 마음이 들썩거려 주체할 수 없을 때 주님을 찾 으면, 괜찮다 하시며 고요 속에 머물게 하십니다.
봄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창덕궁 성정각 근처 홍매화도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모두 마쳤겠네요. 홍매 화를 보러 가기로 한 약속은 지키지 못 하게 되었어요. 대 신 친구가 남긴 ‘기도’와 ‘감사’ 두 단어가 씨앗이 되어 제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야겠지요. 오늘 밤 기도 안에서 친구를 만나면 이 말을 꼭 하려고 합니다. “네가 나를 주님께 이끌어준 덕분에 기쁘 게 살아가고 있어.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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