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기쁨을 향한 길목에서
저녁 식사할 때면 아버지는 항상 밤 9시 뉴스를 켜 놓으 셨습니다. 그날도 가족들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베를 린장벽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장벽 위에 올라가서 맥주를 마시거나 서로 부둥켜안고 축하하 며 환성을 질렀습니다. 제 나이 14살 때였고 저는 처음으 로 ‘화해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2년 후, 스페인 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저는 교환학생으로 북아일랜드에 가서 제 또래 여학생 집에서 몇 주간을 살았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곳은 남아일랜드와 국경을 마주한 곳이었는데, 저희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했습니다. 국경 초소의 경비는 삼엄했고 사방에 군대가 주둔해 있었습니 다. 아이아르에이(IRA, 아일랜드 무장단체)가 활동하던 시기여서 벨파스트에서 총격이나 폭탄 테러 소식도 자주 들렸습니 다. 이 공포스러운 상황을 경험한 후, 저는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통번역학을 전공했습니다. 1994년 어 느 날, 공부하던 중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보육원에 있는 두 북 한 고아의 생기 없는 눈과 극도로 마른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또 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엄청난 연민과 고통’이 몰려왔고, 저는 이때 제 첫 번째 소명을 깊이 느꼈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을 위해 살고 조금이나마 도움 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견진성사를 준비하던 저에게 교리교사로서 함께해 주시던 수녀님께서 마틴 루터 킹 목 사님의 글을 여러 편 주셨는데, 그중 몇 구절은 지금도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암살당하 몇 달 전에 한 설교 내용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북한 사 람을 단 한 명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를 제 소명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평화롭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처와 아 픔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을 드러내고 사랑 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이죠. 예수님께서 주신 화해의 사 명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는 부드러움으로 진실에 접근하고 모두가 그 진실에 동의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과정일 것입 니다. 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제주 4·3, 그리고 5·18 등에서 우리가 겪은 모든 상처를 보듬어 안는, 예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의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 싶습 니다. 정의가 없이는 평화도, 화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해는 마침내 모든 당사자가 오랜 치유의 과정을 거쳐 성 숙한 새 미래를 함께 꿈꿀 때 가능한 것이기에, 한국 가톨릭 교회가 그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저 도 그 안에서 역할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화해와 정의, 평 화의 예언을 실천하는 길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 소리를 들으며, 두려움을 떨치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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