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구자로서 소명과 신앙
우리에게는 저마다 특별하게 여기며 기억하는 날짜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이 기억에는 아름다운 일도 있을 것이고 아주 슬프거나 충격적인 내용도 있겠지요. 저 개 인적으로는 미국 뉴욕시 한가운데에서 2,977명의 희생을 초래한 ‘9·11 테러’가 발생한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시간 저는 민족화해위원회가 추진한 북한방문단의 일원 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엄청난 사건을 숙소로 묵었던 고려호텔 방에 비치된 티브이(TV)가 보여 준 충돌 순간의 짧은 동영상과 평양거리에 부착된 ‘로동 신문’의 관련 기사들을 통해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만났던 북측의 인사들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 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9·11 테러’가 저에게 상기시켜 주는 기억의 너머 로, 2001년 9월, 그때 당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북 한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직접 보고, 그들의 숨결을 느꼈던 그 순간들에 대한 감정들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지 금도 그때를 상기하면 가슴이 뜁니다. 그 당시 느꼈던 복 잡한 감정들을 지금 다시 그대로 복기하는 것은 쉽지 않지 만,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자칫 말과 행동을 잘못하 면 억류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야외 일정 중에 화 장실을 사용하면서 건물 뒤에서 들려온 동네 아녀자들의 일상이야기 속에서 느꼈던 동질감,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지쳐 보이는 거리의 시 민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까지…. 가장 강한 기억은 그들이 우리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두 분의 사제를 모시고 평양을 방문했던 그 기억은, 이 후 북한 연구자로서 저의 목적의식과 연구에 임하는 태도 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의 북한 관련 활 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년을 훌쩍 넘긴 제가 아직까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과 연구 활동을 계속하며, 최근에는 북한 문제에 대한 교회 활동에 복귀하게 된 것도 25년 전의 생생한 기억들이 제 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어려움 속에 있 는 북녘의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고 네가 할 수 있는 역할 을 찾아라.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정년 이후 북한 연구자가 아닌 다른 삶을 찾아 나서기도 했었지만 다른 길은 제가 가야할 길이 아닌듯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고희가 멀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 전히 어렵고 복잡한 북한 문제를 다루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제 모습을 돌아보면, 이 연구가 하느님 이 주신 귀한 소명이자 은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일에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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