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 이준형 알비노 신부님(교구 성소국장)

松竹/김철이 2025. 5. 13. 10:30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이준형 알비노 신부님(교구 성소국장)

 

 

“성소국장 신부님~ 이 신부~ 알비노~ 준형아~” 저 를 향한 호칭들입니다. 저는 한 사람인데 저를 부르 는 이름은 다양합니다.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 들을 통해 저는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이런 호칭들이 과연 본질적인 저의 모 습일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떤 이름으 로 불러주길 바라시나요?

 

인간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 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져서 때로는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인 관 계이며, 그 유일한 대상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혹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신앙 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주셨습니다.(갈라 1,15 참조) 그러므로 부 르심의 주체가 하느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신앙의 기 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선(善)’으로 초 대하셨고, 우리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느님의 부르 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우리 모 두는, 이미 성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심 과 응답,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각자의 부르심 과 응답에 대하여 조금 더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 야겠습니다. 부르심의 주체인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좋은 것을 나누려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흐린 눈과 흐린 마음으로 그 부르심을 모른 척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르신다는 것 은, 우리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의 본질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응답한다는 것 은, 그러한 하느님의 본질적인 뜻을 받아들이면서 하 느님과의 관계를 잘 맺어보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나 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은 매우 인격적이며, 서로에 대 한 애정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도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 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요 한 10,27)라고 하십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는 것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를 믿고, 목자 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로써 양 들은 자신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게 됩니다. 목자도 이 런 양들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보살핍니 다. 목자에게 있어 양들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기 때 문입니다. 이처럼 목자와 양들은 각별한 사랑의 관계 입니다.

 

흔히 성소를 일방적인 하느님의 부르심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보잘 것없는 인간을 당신의 사랑으로 소중히 여겨주시니 우리는 우리가 지닌 신앙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 실히 응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 쁘게 받아들이면서 각자 방향은 다르더라도 그 여정 의 마지막은 하느님 한 분으로 귀결되어야만 할 것입 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품 안에 머 무를 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있습 니다. 긴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다시 만난 5월의 신록 처럼 나에게 주어진 ‘성소’라는 선물을 알아차리고, 그분의 끊임없는 부르심에 용기 있게 큰 소리로 응답 해 봅시다.

“네! 여기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