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너의 죄를 씻으니 | 장진석 도미니코 신부님 (남원시노인복지관)

松竹/김철이 2025. 4. 4. 10:15

너의 죄를 씻으니

 

                                                         장진석 도미니코 신부님 (남원시노인복지관)

 

 

어느덧 사순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노 인복지관에서 4년 넘게 지내다 보니, 처음 관장으 로 왔을 때 지역사회에 나가 인사드리며 만났던 여 러 단체·기관장님들이 반절은 바뀐 것 같습니다. 요 즘에도 새로운 분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 레 임기에 관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러면 저는 “사 회복지 분야는 정해진 임기가 없다.”라고 말씀드리 면서, “한 10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야기합니 다. 서품을 받기 전에는 가톨릭사회복지 현장에 가 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1독서 말 씀처럼 ‘새로운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초대 하십니다. 하느님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 로운 것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과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순 시기는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새 창조,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는 은혜로운 시간입 니다.

 

신학교에서는 새 학기 시작 전에 개강 피정을 하 는데 피정 중 ‘화해성사’가 있습니다. 언젠가 성가대 에서 “너의 죄를 씻으니”라는 성가를 묵상 곡으로 부르는데 그 시간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성 찰의 시간을 갖고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러 갔습 니다. 죄를 고백한 저에게 신부님께서는 쪽지를 주 시면서 보속으로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쪽지에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 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라는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지고 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 들은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은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이 말씀 을 듣고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자리를 떠납니 다. 예수님은 유다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그 여인 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하느님께 돌아와 새 삶을 살 도록 이끄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장면을 “사람의 죄스러 움”과 “하느님의 자비”가 직접 만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왜 땅바닥에 글을 쓰셨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히 에로니무스는 예수님께서 거기 모인 사람들, 더 나아가 모든 인 류의 죄를 쓰셨다고 해석), 분명한 것은 사람들에게 폭력 보다는 눈길을 끄는 지혜로운 방법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그 후 어떤 어려움이 닥쳐 도 잘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의 용서와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서는 그 여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여인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한 사람의 존엄성이 훼 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실패하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서 주 시는 사랑과 위로를 기억하면서 다시 일어서도록 합시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 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사순 시기의 막바지에 이르는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을 조용히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한한 자비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