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고백함’은 ‘하느님을 찬미함’입니다
김현웅 바오로 신부님(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지난날 저의 모든 죄악과 타락을 기억해 내려고 합니 다. 그것들이 좋아서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 님,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서입니다.”(《고백록》 2,1) 아우구스 티노 성인의 고백입니다. 이는 ‘사랑받는 사람의 자신감’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이 야!”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 고, 그분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작은아들은 ‘돌아오는 아들, 회심하 는 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작은아 들’입니다. 회심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사랑과 용서로 기 다리시는 아버지께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제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만을 사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내면의 큰아들이 이를 가로막습니다. 사 실 아버지 곁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큰아들은 크게 잘못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했던 회심과 고 백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들어오는 동생이 못마땅했고, 그 런 동생을 따뜻이 맞아 주시는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 다.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큰아들 은 ‘떠나는 아들, 회심이 필요한 아들’입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작은아들보다, 아버지와 동생 에게 화를 내는 큰아들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동생을, 비록 다시 받아줄 수는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먼저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 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작은아들’보다 ‘화를 내 는 큰아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아버지 곁에서 열심히 일했다 는 이유로 아버지도 용서한 동생을 아버지보다 더 모질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큰아들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기 때 문입니다.
결혼했다는 것은 결혼식 그 순간만을 지칭하는 의미 가 아닙니다. 부부는 일생을 통해 사랑을 더욱 키워 나가 야 합니다. 부부가 되었지만, 더욱 부부가 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이지만, 더욱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아들처럼 아버지의 품을 떠났었다면, 하느님의 자 비하심을 믿고 돌아가면 됩니다. 큰아들처럼 교만했다면, 하느님의 품에서 용서를 청하면 됩니다. 죄를 고백함은 곧 하느님을 찬미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당신의 자비로 품어주시고, 우리의 현재를 당신의 은총으로 채워주시며, 우리의 미래를 당신의 섭리 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 김태환 요셉 신부님(송도성당 주임) (0) | 2025.04.03 |
---|---|
작은 성실함과 항구한 인내심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님(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 (0) | 2025.04.02 |
하느님의 어리석고 애절한 사랑 | 정승익 바실리오 신부님(중2동 본당 주임) (0) | 2025.03.30 |
봄의 쓸쓸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님(2027 WYD 수원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 부국장) (0) | 2025.03.28 |
감옥에 갇힌 이들 | 송현로마노 신부님(부산가정성당 주임 겸 가정사목국장) (0) | 2025.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