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죄를 나에게 다오.”
정준교 로마노 신부님_예성대(공군 제16전투비행단) 성당 주임
아주 배은망덕한 아들입니다. 아직 죽지도 않은 아버지를 찾아가 유산을 내놓으라 말합니다. 그리고 집을 나가 버립니다. 자기 이익만 따지는 아들입 니다. 아마 저에게 이 일이 일어났다면, 저는 아들을 호적에서 파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저도 하느님께 배은망덕한 아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하느님 앞에서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오늘도 기도합 니다. 하느님, 이것 좀 주십시오. 저것도 주십시오. 아버지께 그렇게 ‘주십시오’ 하는 제 모습 또한 부모 에게 한탕 챙기고 떠나려는 탕자의 모습을 닮아있 습니다.
좋은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좋은 아들이란 어떤 아들일까요. 나쁜 자녀가 부 모를 통해 나의 필요와 이익을 충족시키는 이라면, 반대로 좋은 자녀는 어떻게 ‘아버지, 어머니를 기 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녀가 아닐 까요. 사실 모든 관계가 그렇습니다. 가령, 부부의 연을 맺고 남편이 혹은 아내가 상대방을 통해 자 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각 상대방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방법을 서로 고민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하느님을 어떻게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자녀가 되십시오. 마침 복음이 하느님께서 무엇에 기뻐하시는지를 알려줍니다. ‘일어나 아버 지께 가서 말하리라.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기쁨에 겨워 몸 둘 바를 몰라 하십니다. ‘어서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구나!’
죄에서 돌아서, 하느님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는 것, 독서 말씀대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회개는 하느 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지난날 하느님을 저버 리고 말씀에서 벗어나 욕심에 기울었던 잘못을 성찰 하고 하느님께 가서 말합시다. 하느님은 그 모습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시며 하늘의 천사들에게 말씀 하실 겁니다. ‘어서 잔칫상을 준비해라. 내가 오늘 잃었던 아들을 찾았구나!’
예로니모 성인에 관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성정이 불같았던 예로니모가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저는 이것도, 저것도 당신 에게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죄를 나에게 다오.’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 드리는 사순 시기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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