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면모가 가장 잘 드러 나는 명칭은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서 태어나신 곳은 이스라엘의 남쪽 유다의 베들레헴이지 만,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 터전을 잡고 산 곳은 이 스라엘의 북쪽 갈릴래아 호수로부터 왼쪽으로 40여 km 떨어진 곳에 있던 나자렛이라는 고을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 또한 흔했었기에, ‘나자렛’이라 는 지명을 붙임으로써 예수님의 고유함을 표시할 수 있었 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지명인 카나는 그 나자렛에서 걸 어서 두 시간 이내에 당도할 수 있는 가까운 고을이었습 니다. 예수님께서 이 카나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고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도 이미 거기에 계셨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럽게 이 혼인 잔치의 주인공 들이 나자렛 성모자(聖母子)의 지인(知人)이었던 것으로 이해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맙 니다. 혼인 잔치의 흥을 북돋워 줄 포도주가 그만 떨어지 고 만 것입니다. 마침 잔칫상의 상황까지도 살뜰히 살펴 보고 계셨던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이를 놓치지 않고 당신 아드님에게 말씀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신약성경의 언어인 그리스어에는 동사의 인칭에 따른 형태 변화가 여섯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1인칭 단수와 복수, 2인칭 단수와 복수 그리고 3인칭 단수와 복수. 성 경 원어를 보면, 성모님은 여기서 3인칭 복수를 써서 말 씀하십니다. “오이논 우크 에쿠신 - 포도주를 (그들이) 아니 가졌구나.”(필자 번역) 성모님이 바라보신 것은 단순히 포도 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이 시간을 기쁨으로 만끽해야 할 혼인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 이 포도주의 부족함으로 겪을 황망함을 미리 바라보시고, 참 좋은 ‘지인’이셨던 성모님은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 과 배려를 아드님께 건네신 이 마음의 청원으로 드러내십 니다.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드님 이신 예수님은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지인을 향한 성모자의 이 따뜻한 마음은 혼인 잔치의 기쁨이 상실되지 않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 좋은 포도주로 이 잔치를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요한 복 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이 ‘지인의 혼인 잔 치’라는 사실에 새삼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가까이 알고 사귀는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관심과 배려가 얼마나 큰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는지를 성모자께서 보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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