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고나니 올 데가….
한 때 저희 가족도 주일만 되면 독실하셨던 할머니와 함 께 온 가족이 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것이 당연할 때가 있 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였던 제게 미사는 왜 그리 재미없 던지요. 저는 그저 일요일 아침에는 늦잠도 자고 티브이나 보면서 놀러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그야말로 철부지 였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산으로 전학 을 갈 무렵, 식구들이 다 흩어지게 되었고, 저는 그때부터 하느님을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무려 20여 년을요.
그러던 어느 날, 뒤돌아보니 저는 어느새 30대가 되었 고, 그 무렵 한창 어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 니다. 살면서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고는 하지만, 저는 너 무나 나약해져 있었기에, 당장 내일이라도 삶이 끝날 것 만 같은 위기감과 불안감으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 니다. 그 누구도 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것만 같았 고, 이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절망감에 파 묻혀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또다시 끙끙 앓으며 밤을 꼬박 새운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성당에 나갔습니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 지만, 가까운 성당을 검색하고 미사 시간에 맞춰 성당으로 갔습니다. 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날 의 감격스러운 기억이 아직도 또렷합니다. 성당 앞에 서는 순간 제 마음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평안해졌거든요.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손을 잡고 성당 입구에 들어갈 때 느꼈던 그 평온 한 기분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진작 올걸 그랬다는 후회가 몰려왔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내내 저는 선포되는 말씀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그동안 잊고 살았어요. 제가 벼 랑 끝에 서고나니 찾아올 데가 여기밖에 없네요. 용서해 주세요. 저 다시 받아 주세요.” 그렇게 기도드리는데, 오 랫동안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더욱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 다. 그동안 그토록 고통스럽게 고민했던 것들, 저를 그토 록 힘들게 만들었던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희망이 샘솟았 습니다. ‘그래, 잘될 거야. 이까짓 거 사실 아무것도 아니 야. 나에겐 하느님이 계시잖아! 그냥 열심히 살아보자.’ 그렇게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그 날부터 문제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이 모두 절 돕기 위해 나서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제대로 가톨릭 신자가 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꿈 같기만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우연한 일치로 일어난 일이 아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논 리적으로 설명할 자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느님을 절실히 믿습니다. 진심을 다하는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신다고 굳건히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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