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松竹/김철이 2024. 10. 26. 10:15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자니, 살면서 피하고픈 참 아쉬 운 말입니다. 우리는 애달픈 자비보다는 당당한 거래, 다른 이의 처분에 매달리는 비루한 삶 대신,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떳떳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남의 처분이 아니라, 내 요청이 힘을 얻는 삶을 사는 와중에 들이닥치는 가난은 곤 란합니다. 오늘 복음 속 바르티매오처럼 내놓을 게 없는 가 난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자비에 기대어 외칠 뿐입 니다. 천덕꾸러기. 사람들은 눈치를 줍니다. 세상이 이런 이들에게 기대하는 미덕이란 잠자코 사는 것. 소리 지르는 그에게 ‘많은 이가 잠자코 있으라 꾸짖습니다.’(마르 10,48 참조)

 

다행일까요. 우리도 가난하지만, 그보다는 좀 나아 보 입니다. 청이 있을 때 그저 자비에 기대야 할 정도는 아닙 니다. 대학 입학, 취직, 결혼, 삶의 갈피마다 주님 앞에 가 져갈 청이 있고, 우리의 청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봉헌의 크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뭘 좀 내놓은 뒤, 고개를 들고 우리의 바람을 아룁니다. ‘주님, 부족하지만 이렇게 봉헌하오니 이번 일은 좀 들어주셔야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분의 침묵. 자비로운 주님, 우릴 사랑 한다는 그분의 응답이 너무 자주, 너무 느리고, 너무 부족 하기에, 우리의 기도는 기쁨보다는 억울함을, 감사보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 십상입니다. ‘주님, 언제까지 잠자코 계시렵니까? 제가 뭘 얼마나 더 드려야 합니까?’

 

오늘 복음이 이 오래된 물음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주 님께서 우리에게 받으시고픈 것은 오직 하나, 바르티매오 의 가난한 외침이라는 응답. 봉헌할 게 없는 그에게 세상 이 한목소리로 윽박지르고, 그 역시 이제 잠자코 무너져 버리고 싶지만 거슬러 일어난 외침, 무너졌지만 무너지 지 않은 그의 외침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내놓을 게 없어 거래할 것도 없던 그에게 주님의 자비가 남았습 니다. 그리고 자비를 향한 비루한 외침이 주님의 응답을 얻었습니다. 눈을 뜨게 되었다는 기적은 그저 한 부분, 복 음은 길을 모르던 그가 길을 찾았다는 깊고 긴 삶의 기적 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겉옷을 벗어 던지 고”(마르 10,50) 다가가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서 는(마르 10,52 참조) 구원의 기적이 외침에 이어진 은총이었습 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 드려야 할 모든 것은 세상을 거슬 러 일어서는 마음뿐. ‘당신이 남아있습니다. 제게 당신이 있으니 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 풀어 주십시오.’ 거래를 멈추어야 하는 막다른 가난이 복 된 은총이라고, 주님만 남은 우리의 가난이 맑고 투명한 눈이 되어 길을 보게 해주리라고 바르티매오가 격려하고 있습니다. 무너진 모든 이에게 주님은 언제나 응답하시 는 자비라고 온 마음으로 그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의 오래된 배고픔, 당신의 응답이 오히려 완고하게 버티 고 있는 우리 곁에서 참 오래오래 우리의 가난을, 우리의 외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