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스승을 떠나는 까닭은
손태성 다미아노 신부님(하단성당 주임)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 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 6,66)
누군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께 자신의 인생을 거 는 사람을 제자라고 부릅니다. 참스승을 만났을지라 도 제자가 스승을 떠난다면 가장 불행한 일이지요. 그 런데도 제자들이 스승 예수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 을까요?
제자는 스승의 말을 듣고 스승의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열망하지만 제자는 스승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스승은 깨닫고 가르침을 베풀었 지, 듣고 깨달은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깨달 음은 언어도단 불립문자(言語道斷 不立文字)입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스승의 깨달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자 한다면 잘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입 니다. 스승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고 그 말이 귀에 거 슬렸던 것, 그로 인해 결국 떠나감은 그들의 ‘들음’의 자세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로마 10,17) 믿지 않는 자들은 듣지 않은 자들입니다. 스승의 말을 듣되 듣지 못한 자 들은 오히려 자신의 ‘알음알이’의 세계를 견고히 쌓아 가고 조각난 지식들을 진리라고 착각하였습니다. 화 려한 언어들과 정교한 논리들을 스승의 가르침과 동 일시하며 자신의 뜻에 스승이 동의할 것으로 믿게 되 거나(루카 9,54 참조), 높은 자리를 원하며(마르 10,35 참조), 머지않아 스승을 배신하는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요한 6,71 참조)
지금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나의 판단과 생각을 잠시 내려놓으십시오. 자연의 소리를, 세상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그들과 내가 일체 (一體)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마저 없는 완전한 들 음이 될 때, 비로소 스승의 마음을 듣게 되고 그분이 나를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제자도 더 이상 듣고 깨 닫는 사람이 아니라 깨닫고 말하는 스승처럼 되었습니 다. 스승과 하나가 되어버려 떠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말하고 신이 듣고
신이 말하고 내가 듣고
서로 말하지 않고 서로 듣고
서로 말하지 않고 서로 듣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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