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누룩 |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松竹/김철이 2024. 8. 18. 12:44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1928년 3월 3일 언양(현 울산시 울주군) 지역 16개 공소의 회원 대표 20명이 참석하여 ‘언양지방천주공 교협회(彦陽地方天主公敎協會)’를 조직하여 창립총회 를 개최하였다. 언양 본당의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 보 조와 성전건립을 위하여 결성하였는데, 부산진 본당 에서 분리된 이후 교회의 자립과 전교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성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당시 한국천주교 회가 외국 교회와 단체들의 재정적 도움에 대해 이제 는 자립하고자 한 것이다.

 

협회는 당시 언양 본당이 관할하던 지역의 공소들을 포함하였고, 임원은 각 공소의 회장들이다. 중요한 역 할은 이 시기 천주교회가 시행하는 가톨릭 운동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재정기반인 공소전(公所錢) 운영이었다. 공소전은 각 공소와 성당보좌금 등 교회 의 전반적인 운영에 사용되었다.

 

이 같은 조직의 존재와 역할은 천주교 수용 초기부 터 이어져 온 언양 지역 천주교 신앙공동체의 역사적 유산이 바탕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평신도 지 도자들이 공소들을 하나로 묶는 공교협회를 조직한 것은 태평양전쟁기, 해방과 미군정기의 격동기 속에 서 천주교회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협회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기록물을 보면서 문득 영 국의 유명한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 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 할 때 종교학 시험에서의 이야기이다. 시험 문제는 물 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 에서 해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바이런은 두 시간 내 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시험 종료 직전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라는 한 문장을 적었고 최고 학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천주교에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졌던 박해시기와는 다르지만 식민지기 평신도들은 협회라는 조직을 결성 하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된 포도주로서, 교회의 재정자립과 전교로 교세 를 확장해 나가는 등 그들의 사명을 실천하고자 하였 다. 외국 선교사의 도움 없이 평신도를 중심으로 신앙 을 받아들이고 교회공동체가 형성된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적 모습을 상기시켜 볼 때, 평신도로서의 자부심 과 정체성을 가져도 충분히 좋을 것이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폭포처럼 한 사람 한 사람 평신도의 사명과 역할이 바로 붉은 포도주로 변해가 는 주인공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