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섭리와 가족의 힘
연기자가 된 저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2002년에 드 라마 <러브레터>를 찍었는데 그 내용은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부님의 사랑 이야기였고, 저는 신부님의 라이벌인 친구 역할을 맡았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여러 예쁜 성당들을 다 녔고, 그때 처음으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눈 것 같습니다. 이후 영화 <러브픽션>에 카메오로 출연할 기회가 있었고, 결국 신부님 역할을 맡게 되었지요(참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되돌아보면 어렸을 때부터 저는 천주교의 분위기에 둘 러싸여 자랐습니다. 심지어 신자가 아니었던 때도 하느님 이 계시고, 또 하느님은 저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굳은 믿 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 고, 고난과 고통도 허락하셨지만,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주 셨습니다. 비록 온전한 대화라고 할 수 없겠지만 하느님 께 자주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이건 좋은 것 같아요.”, “도대체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느 님, 저는 왜 태어난 겁니까?” 등등이라고 말이지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내(어시스트 때 만 난 여대생)는 다른 종교를 갖고 있었고 저 역시 무교인데도, 아내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길 원했습니다. 저는 저희가 세례를 받는 것이 그 학교에 대 한 예의라고 생각했고, 다행히 아내도 성당에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역시나 하느님께선 제게 안내자를 이어서 보내셨고, 견진성사까지 받게 하셨습니 다. 아내는 새벽 미사에 열심히 참례했고, 첫째는 그토록 바라던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첫째 아이로 인해 천주교에 들어서게 된 이후, 장인어른과 개신교 신 자셨던 장모님 그리고 아이들도 성당에 다니며 가족 모두 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둘째 아이가 첫영성체를 하고 난 다음, 친 구와 복사를 서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반대했습 니다. 첫 과제가 한 달 동안 새벽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었 는데, 학교 다니며 공부하기도 바쁜데 복사까지 하게 되면 너무 힘들 거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 부부 도 덩달아 힘들어질 것 같아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둘 째의 고집은 대단했고 결국 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에 일어나기도 힘들 텐데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성당에 가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지만 참 대견했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아들을 보면서 믿음으로도 좀 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가족은 안전망이자 지지대이며, 어려움과 시련으 로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극복할 힘을 선사하는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족의 희생과 헌신, 기도는 항상 저를 강하게 해 주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더욱 깊일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느님과 가족을 통해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 저는 오늘도 부족하지만, 그 사랑 과 용서를 저의 방식으로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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