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松竹/김철이 2024. 4. 23. 11:27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어린 시절, 다른 집과 경제적인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 던 우리 가정 형편 안에서 엄마는 먹성 좋은 저희를 먹이 고 가르치시느라 애를 쓰셨던 것 같습니다. 허리띠를 졸 라 매면 공부를 곧잘 하는 둘째인 저를 조금이라도 더 가 르칠 수 있겠다는 엄마의 생각을 저는 잘 읽을 수 있었습 니다. 그렇게 저는 부모님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도 원하는 곳으로 입학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것은 주님의 큰 그림 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어린 시절로 가보려고 합니다. 둘째인 저는 발달이 늦된 오빠를 대신해 첫째여야 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오빠 손 을 붙잡고 엄마가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며 한참 한글을 가르 치는 동안 저는 옆에서 어깨 너머로 이미 깨우쳤던 것 같습 니다. 오빠 학원비까지 제가 다 쓰던 시절엔 점수만이 부모 님께 드릴 수 있는 보답이었습니다. ‘내 인생에 재수, 삼수 는 없다!’라는 목표를 세운 후엔 단 한 번도 이를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배우로 데뷔했는데, 제 입장에서는 대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꿈을 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배우라는 직업, 그 꿈을 이루게 되었 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빠와 저 사이의 일들, 그때의 슬프고 진한 감정들, 가족들이 오빠를 사랑하는 방식에서 배우의 기본을 이미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껏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저만의 연기 기술을 하 나 공개해 볼까 합니다. 그건 바로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이해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배우는 늘 작품마다 다른 직 업뿐 아니라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현실이 아닌,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대충 책 으로 읽어서는 그 인물을 연기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상황 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을 이해해야만 하지요. 대 본을 토대로 한참을 파고듭니다. 그러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 사람은 이런 때에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알 아가는 것이지요. 작년은 저의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였습 니다. 요즘말로 ‘소오름!’입니다. 그동안 끊이지 않고 이 직업 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소름!’ 그렇게 많은 인물들을 만나며 제 가 중점적으로 했던 생각이 늘 같았다는 것도 ‘소름!’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루카 1,38 참조)라는 성경 구절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눈물 많고 불안 하던 어린 시절, 이 말씀을 되새기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주님께서 정말 당신 뜻대로 이루셨다는 확신이 듭니다. 처음부터 나를 오빠의 동생으로 삼아 주시고, 커서는 사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업을 갖게 하심으로써 ‘나’라는 아이를 주님의 자녀로 키우시는 큰 그림을 갖고 계셨던 게 아닐까? 이렇 게 생각하니 어깨에 빵빵하게 힘이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배우라서 좋겠다. 유명해서 좋겠다.’ 하시는데, 네, 물론 그것도 참 감사합니다만, 오늘은 그것들보다는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주님의 딸임을 자랑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