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새롭게
김철이
2023년 계묘년 한 해는 정말 다사다난했고 우여곡절이 숱했던 해였다. 아픔도 많았고 다툼도 많았지만, 양심 밑바닥에서 절절히 우러나는 뉘우침은 접하기 힘든 한 해였다. 생각과 말과 행위는 물론 손놀림 발걸음조차도 진실로 뉘우치는 모습은 접하질 못했다. 2023년 계묘년 한 해만 살 것이 아니니만큼 지난해의 오류를 마중물 삼아 2024년 갑진년 한 해만큼은 한번 범했던 오류는 되풀이하지 않아야겠다.
한 가정주부가 마트에서 간고등어 네 마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네 식구가 먹을 반찬으로 요리해 밥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간고등어를 꺼내 구우려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간고등어가 온 데 간 데가 없고 전날 자신이 신고 외출했던 구두 두 짝이 사이도 좋게 나란히 맞이했다. 다급했던 나머지 부랴부랴 동네 마트에서 다른 찬거리를 사 오기 위해 신발장 문을 열었더니 간고등어가 든 까만 비닐봉지가 원망스레 놓여 있었다. 이러하듯 우리의 생각을 두어야 할 곳에 두지 않으면 크고 작은 사단의 바람이 일기 마련이다.
어느 날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구두쇠에다 말본새가 곱지 못한 남편이 거친 말투로 아내에게 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 오라고 했다. 아내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가 소의 큰 혀를 사 왔다. 그 소의 혀로 그날 끼니때마다 요리해 먹었다. 며칠 후 남편이 트집을 잡듯 오늘은 시장에서 가장 싼 찬거리를 사 오라고 했다. 아내는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소의 혀를 사 왔다. 남편이 버럭 대며
“어째서 가장 맛있는 걸 사 오라고 했는데 소의 혀를 사 오고, 가장 싼 걸 사 오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또 소의 혀를 사 왔느냐?”
고 물었더니 아내가 답하기를
“가장 맛있는 것도 혀고, 가장 싼 것도 혀랍니다. 우리 사람들의 혀는 세 치밖에 되지 않아도 곱고 맛있는 말 한마디 하기 어렵지만, 44센티나 되는 긴 혀를 지니고도 묵묵히 일하며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충분히 다해 내잖아요. 그러니 소의 혀가 비싼들 절대 비싼 게 아니잖아요.”
이후 남편은 말본새도 고치고 무작정 아끼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할 곳엔 반드시 쓰고 베푸는 생활 습관으로 바꾸었다.
어느 가을날 시골에 사는 한 청년이 서울 강남에 사는 한 친구를 찾았다. 두 청년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 온 사이였다. 자동차와 인파로 북적대는 도심지를 둘이 걷고 있었는데 시골 친구가 느닷없이 걸음을 멈추더니
“이 번잡한 시내 한가운데에서도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네.”
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던 즈음 도시 친구가 퉁명스럽게
“아! 이 서울에서도 강남 한복판에서 무슨 놈의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단 말이야?”
라고 거부감을 나타내니 시골 친구가 서울 친구의 손을 이끌고 귀뚜라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니 길모퉁이에 넝쿨나무로 장식된 집의 벽 틈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배어 나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에 서울 친구가 시골 친구에게 말하기를
“넌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서 청력이 뛰어난가 보네.”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시골 친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아스팔트 바닥에다 떨어뜨렸다. 동전은 굴러가더니 저만큼 가서 멈춰졌는데 때마침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떨어진 동전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중 꼬마 하나가 빨리 달려가 오백 원짜리를 손에 집어 들고 돈을 주웠다고 좋아하며 종종걸음으로 돌아갔다. 이때 시골 친구가 말하길
“내가 귀가 밝은 게 아니라 당신들의 청력이 무뎌진 거요. 문제점은 관심사가 문제점이고요.”
한 도박사가 오랫동안 영성 수련을 쌓은 노 수도사를 찾아가서 자기의 말 못 할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제 화투 놀이를 하는데, 속임수를 쓰다가 발각되어서 상대방이 저를 무자비하게 때려 창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이때 무릎이 부러지고 깨져서 이다지도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게 무슨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노 수도사는 도박사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만일에 자네라면 이제부터는 1층에서만 화투 놀이를 하겠네”
라고 했다. 이 말에 도박사는 어리둥절했다. 더는 도박하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제자들 또한 당황한 나머지
“선생님! 다시는 그런 일을 못 하게 하셔야지 앞으로는 1층에서만 하라고 하시다뇨?.”
노 수도사가 답하시길
“저 사람은 도박을 끊지 못할 사람이다. 그러니 또다시 2층에서 내 던져지면 되겠느냐? 해서 1층에서만 하라고 했느니라.”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인데 발의 나라 왕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짜증을 냈고 때로는 심한 화를 내기도 했다. 발에 먼지가 묻는다고, 거친 땅 때문에 종종 발이 상한다고 늘 투덜거리며 불만스러워했다. 급기야 이런 어명을 내렸다.
“발이 닿는 온 나라 전역을 쇠가죽으로 다 깔아 도배하도록 하라”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전국에 퍼지게 될 즘 뭇 백성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혜로운 갖바치가 왕을 찾아와 말했다.
“소가죽으로 온 땅을 덮는다니요? 그 어명은 가당치도 않은 생각입니다. 온 세상 소를 죄다 잡아도 그 명만은 따를 수 없을 겁니다. 그 명은 거두시고 폐하의 두 발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쇠가죽 두 조각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쇠가죽으로 폐하의 발을 잘 감싼다면 더는 발에 상처가 생기지도 먼지가 묻지도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후 왕은 갖바치에게 큰 상과 더불어 높은 벼슬을 내렸고 이 일이 구두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과 기능은 신께 부여받은 특별한 선물이므로 이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적시적지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특별한 선물을 내린 드높은 분께서도 서운하게 여기지 않으실까, 한 해의 서막이 새롭게 오른 만큼 우리의 삶도 한층 새롭게 단장하는 한편 생각과 말과 행위 또한 함부로 나대지 말고 더욱 신중하게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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