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준비한다는 것
김연범 안토니오 신부님(사목국장)
사제로 살아가면서 참 많은 부류의 신자들을 만나게 됩 니다. 신자이면서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바보스러우리만치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조금 손해를 본다고 생각되 더라도 착하게 살아가는 신자분들을 만나게 될 때가 참 많 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열 처녀의 비유’ 말씀입니다. 신랑을 맞으 러 나간 열 처녀가 등불을 켜 놓고 늦어지는 신랑을 기다리 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다섯은 슬기롭게 등과 함께 기 름도 준비했는데 나머지 다섯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다 가 한밤중에 신랑이 오게 되었고 그제야 등이 꺼져가는 것 을 알게 된 다섯 처녀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 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렇게 되면 모두 다 기름이 모자라 등불이 꺼지게 되니 필요한 기름을 따로 구해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섯이 기름을 사러 간 사 이에 신랑이 도착하여 문은 닫히고 잔치가 시작되어 그 다 섯은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 복음을 들으며 앞에서 이야기한 그 착한 신자들 생각이 났 습니다. ‘내가 아는 그 착한 신자들은 그런 요청을 받으면 자기 등이 꺼질 것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자기 기름 을 나누어 줄 것이 분명한데…. 자기도 못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모른척하지 못할 그 착한 신자들 어떡하지?’
앞으로 세 주간에 걸쳐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은 종말을 준비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 대합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언제일지 모르는 그 마지막을 늘 준비 하며 깨어 있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는 ‘기름’을 마련하는 것이 그 준비입니다. 비유의 그 기름은 지금 당장 사 올 수 있는 그런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지금 나누어 준다고 해서 나 누어 받을 수 있는 것도 분명히 아닙니다. 그 기름은 우리 각자가 평생의 삶을 통해 늘 준비해야 하는 기름, 누군가 대신 사거나 만들어 줄 수 없고 나의 노력과 선행을 통해 준비해야 하는 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기름을 잘 준 비하며 살아갈 때 그분의 오심이 두렵거나 피하고 싶은 일 이 아닌 행복과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 날 과 그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오늘도 기쁘게 그 기 름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제56회 평신도 주일입니다. 세상 속에서 평신도 의 사명과 사도직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깊이 묵상하는 오 늘, 우리 모두 그 기름을 준비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초대하고 그들을 환대하며(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그들과 함께 그리스 도를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며(연중 제34주일-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 도록 연중 마지막 세 주간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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