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내 뜻을 비운 자리_이윤벽 프란치스코 신부님(만덕성당 성사담당)

松竹/김철이 2023. 10. 5. 09:14

내 뜻을 비운 자리

 

                                                              이윤벽 프란치스코 신부님(만덕성당 성사담당)

 

 

오늘은 우리 부산교구 수호자이 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 의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예 수님을 낳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 다.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아 들을 잉태할 것이다.”라는 소식을 전하자 마리아께서는 “이 몸은 주 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 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 말 때문에 인류 의 역사가 바뀌었고, 시골 처녀가 하느님의 모친이 되었으며 교회가 만들어지는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이 말씀은 ‘주님의 종’ 이라는 주어와 ‘이루어지다.’라는 서술어가 중심이 됩니다.

 

먼저 ‘주님의 종’은 굴종이 아니 라 자발적 순명을 말합니다. 순명 과 굴종의 차이를 요한 묵시록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대 천사 미카엘을 처음 만났을 때 너 무 놀라 천사의 발 앞에 무릎을 꿇 으려 하자 대천사가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지 마라. 나 도 너와 같은 종이다. 예수님의 증 언을 간직하고 있는 너의 형제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 하느님께 경 배하여라.”(묵시 19,10) 당연한 말이지 만 우리는 하느님 말고는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선에 벗 어나면, 분명히 아니라고 해야 합 니다. 상대가 누구든 함부로 무릎 을 꿇고 굴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서술어 ‘이루어지다.’는 성모님의 온 생애를 관통하는 단어 일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이 당신 삶에서 이루어지도록 기 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당신 어머니처럼 당신의 공생활 내내 이 동사를 화두처럼 품으셨을 것입 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광야로 가셨고, 홀로 기 도하셨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께 서 사용하셨던 수동태의 이 동사는, 매사에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 느님과 거래하고 때로는 하느님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우리들에게 매 서운 채찍이 됩니다.

 

나를 비운 자리에 당신의 뜻을 채우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한 주 간, 그리고 성모님께서 그러셨듯 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곰 곰이 되새기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