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우리의 첫째 자리 | 석현일 마르코 신부님(내수 본당)

松竹/김철이 2023. 9. 13. 09:15

우리의 첫째 자리 

 

                                           석현일  마르코 신부님(내수 본당)

 

 

주일학교 미사 때 학생들에게 한국 천주교 103위 순교 성인 중 가장 어린 나이였던 유대철 베드로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며 “우리 친구들도 하느님을 위해 용감히 목숨을 바칠 수 있겠어요?”라고 물으 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있게 “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신부님! 근데요. 다들 저렇게 말해도 실제로 그런 상 황이 오면 안 그래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웃기기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학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혹시 어른들이 신 앙 안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였나?’ 하는 생 각과 함께, ’실제로 칼을 들이대며,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하면 나는 죽음 앞에서 당당히 하느님을 증거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

 

신앙 때문에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진 고문 가운데 수천 번의 고민과 갈등도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목숨보 다도 신앙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서도 항상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고 사셨던 분들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신앙 덕분에 오늘 날 우리는 시간과 장소, 모든 것들이 다 갖춰진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위 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의 어려움이나 위험 한 상황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태함이나 안일한 마음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협하고 있고, 때로는 세상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은 둘째도 아닌 맨 뒷자리가 되어 버린 채 세상이 주는 기쁨만을 찾으려 하고 있기도 합 니다.

 

우리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누구 때문에 어떠한 희생을 하고 있습니 까?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 떤 희생도 감수하곤 하지만, 하느님을 위해서는 조그마 한 희생과 양보도 불편해하며 인색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고개를 들어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신 앙의 선조들처럼 하느님께 우리의 첫째 자리를 내어드 리도록 합시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신앙의 선조들이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지켜낸 소중한 신앙입니다. 하 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고 우리 자신을 그다음 순위에 두어도 충분히 주님 안에서 행복을 찾고 누릴 수 있습 니다. ‘하느님이냐?’, ‘세상 것들이냐?’라는 고민은 이제 접어두고, 당연히 하느님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지혜 로운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한국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했던 신앙 선조들의 삶 을 기억하며, 다시금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새롭 게 해야겠습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