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돈 버는 게 나쁜 일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여러가지 것들이 필요하고 그것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노동’이라는 활동을 해야 하고 그 노동의 결실로 정당한 몫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돈 버는 일이고 그래서 그것은 필요한 일이고 나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돈벌이를 가장 최우선의 과업으로 삼고 자신에게 모든 좋은 것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도외시한다면 그 돈벌이는 나쁜 일이 됩니다. 또 그 돈을 벌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과도하게 추구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한다면 그것도 나쁜 일이 됩니다. 또 그 돈벌이를 하면서 정당하게 소요되어야 하는 비용을 피하면서 부당 이득을 취한다면 그것도 나쁜 일이 됩니다. 돈벌이 자체는 나쁜 행위가 아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 얼마든지 나쁜 행위로 변질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님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한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따뜻하게 대해 주어야 하고 서로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상대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을 염려해 주어야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기도해주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헌데 그렇게 한 베드로는 왜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걸까요?
그것은 보다 중요한 것을 두고 덜 중요한 것을 앞에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이를 올바로 식별하지 못했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수난보다 주님의 인간적 안위를 염려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걸림돌이 되는 일이었고 사람의 일만 신경쓰는 일이었기에 그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신앙생활과 사회 봉사 활동을 착각합니다. 우리는 그저 사람들의 인권 신장과 생활 개선을 위해 활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을 핵심으로 하는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핵심에는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현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바의 골자를 드러냅니다. 세상은 현세에서 얻기 위해서 싸웁니다. 그들도 목적을 위해서 고난을 감내하지만 그 모든 활동은 현세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활동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세가 최종목적이 아닌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목숨이, 즉 현세에서 최종적인 가치인 지상 생명이라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잃을 수도 있는 것이 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 자신에게 그 선택의 기회가 오지 않아서 그런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숨과 신앙을 선택하는 기회가 왔을 때에 사람은 흔히 ‘목숨’을 선택합니다. 초전의 수많은 어르신들의 자녀들이 그러합니다. 일단은 먹고 사는 일이 우선이라며 신앙을 등한시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관찰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속아서는 안됩니다. 신앙을 챙긴다고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밥을 굶게 되어서 신앙을 내려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하고 주말에 방해받지 않는 삶을 따르다 보니 신앙을 멀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선택은 결국 그 결과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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