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하는 하느님"
송홍영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셨던 말씀의 마지 막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받게 될 미움과 박해를 각오하라고 말씀하시며, 그러나 하느님께서 지켜주실테니 결코 두려워 말고, 복 음을 선포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이처럼 중요하고도 무 거운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내기 위해서 어떤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말씀 그대로만 따르자면 혈연의 정은 간과해도 좋다는 뜻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십계명 중 제4 계명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의 정을 가볍게 치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럼에도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한 일들에 있어서는 그 무엇도 또 그 누구도 우선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 신 것입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며, 당신 자신을 질투의 신으로 계시하셨 습니다. “너희는 다른 신에게 경배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이름은 ‘질투하는 이’, 그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탈출 34,14) 하느님께서 자신을 마치 질투의 화신처럼 표현하신 것은, 그만큼 우리들이 당신을 올바로 섬기지 못하고 있음을 강하게 표명하신 반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를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주님의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잘 담고 살아갑시다. 하느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을 믿고, 세상의 것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복음의 가르침보다 세상 일들에 더 깊숙이 스며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예수님께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나는 십자가가 아닌,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 점점 더 기대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유심히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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