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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빛의 자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은? I 사순 제4주일 강론 2023.3.19

松竹/김철이 2023. 3. 19. 00:00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은? I 사순 제4주일 강론 2023.3.19 I 전삼용 요셉 신부님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주임) 한 말씀만 하소서 유튜브 운영 I 가톨릭스튜디오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253gQTob_fI

 

 

 

 

가해 사순 제4주일 –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은?

 

마더 데레사가 젊었을 때 어느 빈민굴을 방문하였습니다. 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돼지우리 저리가라 할 만한 방에서 술독에 빠져 게으르게 살고 있었습니다. 방엔 등잔이 있었지만 청년은 등잔을 켜지 않고 낮에도 어둡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등잔에 불을 켜자 청년은 화를 내며 불을 끕니다. 성녀는 지지 않고 다시 불을 켰고 청년은 다시 껐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화가 난 청년은 등잔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 깨 버렸습니다. 성녀는 시장에 가서 새 등잔을 사서 돌아와서는 그 방에 불을 밝혀주고 수녀원으로 돌아왔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 우연찮게 한 젊은 수녀를 통해 그 청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년은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착실히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마더 데레사와 같은 옷을 입은 젊은 수녀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 주십시오.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삶 안에서 빛나고 있다고.”

빛에는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빛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보게 만들어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날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창세 1,3 참조). 그 빛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9,5)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세상은 위 청년처럼 빛을 싫어합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2008)는 ‘80억 인구가 눈이 멀고 혼자만 앞을 볼 수 있다면?’이란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눈이 보임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됩니다. 본래부터 앞을 볼 수 없었던 이들에게 눈먼이들은 착취를 당합니다. 혼자 눈이 보이는 이는 그들에게 표적이 되어 숨어서 그들과 저항할 세력을 모아야 했습니다. 본래 앞을 못 보았던 이들에게는 눈먼자들의 도시는 천국입니다. 그래서 빛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차지한 권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태생소경에게 눈을 만들어주십니다. 당연히 자신들 안에 빛이 있다고 믿었던 유다 지도자들은 그 눈을 뜬 소경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어둠을 더 사랑하여 빛을 보고도 눈을 감습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어둠은 세상이 돈과 쾌락과 힘을 추구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러한 삶이 지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혼자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과 함께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빛을 받아들인 이들을 세상에 파견합니다. 오늘 태생소경이 눈을 씻은 실로암은 그래서 세례로 파견받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동안의 삶이 어둠이었음을 받아들이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거짓의 두렁이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는 분명 행복한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감정을 긍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함을 벗고 거짓의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들이 어둠임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기들 스스로 고통이 행복이라고 믿기로 한 것입니다.

무언가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을 덮어버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거짓말입니다.예수님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이야기를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요한 8,43)라고 하시며,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 너희 아비의 욕망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을 말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기 때문이다”(요한 8,44)라고 하십니다.

거짓말은 세속-육신-마귀가 행복이라고 덮어버리는 어둠입니다. 거짓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라고 하시며 거짓이 없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찾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