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松竹/김철이 2020. 11. 10. 09:00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하느님의 나라를 기대하는 우리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와 같이 현실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이 되돌아보면 하느님 은총 속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하지만 실제 우리의 모습은 대부분 은총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의 선한 삶과 정의로운 삶을 바라시며 그 보상을 주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이 가끔은 그 순서가 바뀌거나 어떤 때는 주객이 전도된 채 우리의 신앙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경우를 봅니다. 누군가는 은총을 보장하거나 약속하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맹목적으로 결과로서의 은총을 담보로 지극정성을 들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히 주어질 은총의 보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떨 때는 시비에 걸리신 하느님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협박을 당하는 이상한 모양새는 당사자는 전혀 이상함을 짐작 못하고 거기에 집착하듯 매달리며 자신의 신앙이 강렬하고 열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이런 태도가 교우들 사이에 유행하듯 자리잡고 경쟁하듯 하느님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시도나 자랑하는 일까지도 이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생각에 이미 가르침을 두셨습니다. 

 

 

"종이 분부를 맏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우리가 선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근본부터 하느님을 닮았고 그것이 우리의 정상적인 삶이기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다른 것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억지나 수고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참고 이기면 돌아오는 것이 있다가 아니라 그 자체가 옳다는 것을 알고 그 삶에서 오는 보람과 이유로 살고 이후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그렇게 의미없는 열심을 강조하거나 자체로 거룩한 삶을 보상을 바라는 수고로 돌리려는 시도는 그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쓸모 없는 종"이라 표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참 많은 것의 가치가 바뀐 세상이라 아마도 그 때보다 지금 이 말씀이 더 필요한 느낌이지만 그런만큼 이 말씀에 거북함을 느낄 이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