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松竹/김철이 2020. 10. 12. 09:06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nMuY8LEmHQ4

 

 

어제는 묵상을 적고도 녹음도 하지 않고, 우울한 하루를 지냈습니다. 이 묵상이 끝나면 뒤늦은 녹음을 하게 되겠지만 진하게 휩싸고 도는 우울한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자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손들어 보라고 하면 극 소수의 사람, 아니 거의 사람들은 손을 들지 않습니다. 귀찮음으로 그럴 수 있다고 위안해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판 앞에서는 자신 없는 사람들로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벌써 20년째 이렇습니다. 본당에서 2년을 살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면서도 정말 하느님을 사랑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하느님은 놀라운 능력의 하느님이 되지 않으시면 믿음도 안심도 하지 않습니다. 무지하고 무능한 신부가 그런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 저것을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주님께 모여드는 것을 신앙행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이유를 모두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결코 회개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요나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하느님을 너무 잘 알았고, 그래서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원하지 않았던 요나는 혹시나 하는 그 하나의 희망을 피하려고 그들을 살려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피해 도망을 갑니다. 결국 그로 인해 니네베는 구원을 얻지만 그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요나와는 달리 아버지의 뜻에 동의했고 그것을 위해 회개할 줄 모르는 이 백성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이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니 외치는 목소리로 언젠가 닿을지도 모를 노력으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 변화를 보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주님의 목소리라도 남기는 것이 사명이라 오늘도 그렇게 말하고 그들에게 주님을 전합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하는 요나와 같은 처지인데도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에게 하느님을 전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를 슬퍼합니다.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목자가 오면 좀 나을까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무심히 그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을 보며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