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https://youtu.be/nOAAOLgr3uc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중 "일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을 지니고 함께 하는 것에서 우리는 일치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또 서로에게 강조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전혀 다른 존재일수밖에 없는 우리가 일치를 이루는 일은 차이의 크기와 종류만큼 힘이 듭니다.
한 하느님을 믿으며 사는 우리도 일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사제들 조차도 모든 이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반대 받을 용기'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면 결국 이해할 것이라는 정도가 최대한 양보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다르셨고,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가 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함께 머무르고 서로 참아가며 공존하는 일치는 주님이 원하신 일치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색의 삼원색'과 '빛의 삼원색'이라는 아주 어릴 때 배웠던 미술 시간의 기억을 꺼내어 이해해 봅니다.
색의 삼원색, 곧 세상의 빨강과 노랑, 그리고 파랑이 만나면 그 한가운데 일치되는 색은 검은 색이됩니다. 서로가 섞일수록 어둡게 되어가고 비율이 높아질 수록 각자의 색으로 짙어지며 균형을 잡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색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서로를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장을 지닌채로 함께 있으면 결국 우리의 일치는 암흑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빛의 삼원색을 이루는 푸른 빛과 초록 빛, 그리고 붉은 빛이 만나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밝아지며 균형을 이루면 누구도 만들수 없는 빛을 보여줍니다. 흰색이라고 말하지만 빛이라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빛이 되라는 요구입니다. 암흑은 서로의 이기심과 이익을 양보하지 않는 공존이며 그것으로 한편으로 쏠리며 손을 잡으면 그 색은 바래지고 회복될 수 없는 검은 색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아닌 서로를 비추며 나누려 하면 우리는 함께 있을 수록 기쁘고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일치는 바로 이 빛의 일치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늘 다양한 색처럼 느껴지지만 모두가 그 중심에서 빛을 받아 밝은 길을 걷고 행복의 세상을 벗어나지 않게됩니다. 주님은 우리끼리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우리도 함께 하기를 초대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지막 바람이었고 아버지께 드리는 청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2천년을 넘는 시간동안 누리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0) | 2020.05.30 |
---|---|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0) | 2020.05.29 |
QR로 듣는 교황님 말씀|기도, 가까이 다가감, 자비로운 정의와 정의로운 자비 (0) | 2020.05.27 |
강우일 주교님 환경의 날 담화 (0) | 2020.05.27 |
구요비 주교님 ‘코로나19와 생명’ 관련 담화 발표 (0) | 2020.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