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독공(獨功)|(수필)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20. 5. 11. 01:05

독공(獨功)

                                              김철이

                                 

                              


 독공(獨功)이란 판소리 가객(歌客)들이 득음(得音), 즉 소리의 경지에 오르기 위하여 토굴 또는 폭포 앞에서 하는 발성 훈련. 독공창(獨功唱)은 폭포 소리를 이겨내게 하거나 외부소리와 섞이지 않는 토굴 속에서 반사음으로써 창법을 교정하는 판소리 특유의 발성 수련이다. 그러나 이 독공이란 단어가 판소리를 전공하는 소리꾼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고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독공이란 단어는 세상천지 머리를 하늘로 두고 두 발을 땅을 디디며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분명히 해당되며 관련이 있는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본다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이 독공이란 단어를 위해 살아야 하고 이 독공이란 단어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을 투자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살고 싶고 크게 되고 싶은 욕망이야 인간 본연의 본능이 아니던가, 그러나 갖은 욕망과 욕심을 뒤로하고 한 번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 타고난 운명이다. 세상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 다름없이 엇비슷하게 살다 가지만, 분명히 상반되는 모습이 있다. 그것은 태어날 때와 한 생을 마치고 돌아갈 때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살아갈 문화가 다르고 민족성이 다르고 본연의 생활 풍습이 다르다 할지라도 이 땅 위에 살아갈 사람이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엇비슷한 모습을 지닌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올 때와 갈 때의 모습과 표정이라는 것이며 몹시도 소란스럽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먼저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의 모습과 표정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한 생명이 세상에 올 때 하늘이 노랗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산모의 산통으로부터 적지 않은 소란이 일기 시작하고 곧이어 고 작은 몸집에 어디서 그렇게 우렁찬 울음이 터져 나오는지 모를 일이지만, 모태를 열고 세상 첫발을 내딛는 초생아의 울음소리로 소란의 절정을 이루는데 이 모습에서 애매한 점은 하늘의 축복으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목숨을 얻어 새 생명으로 세상 터전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개구리도 아닐 텐데 핏줄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배를 불룩거리며 태어나자마자 누굴 칠 것도 아니면서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울어야 하나 하는 것이다. 물론 열 달 동안 모태 속에서 한없는 모정의 갖은 사랑을 한 몸에 다 받으며 지내다 한순간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오다 보니 낯선 세상 모습이 두렵기도 하고 적응을 하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이 순간, 이 모습에서 인간의 본성을 충분히 느끼고 확인할 수 있음이 아닌가 싶다. 핏줄이 선 배를 불룩거림은 미래를 살아갈 자신의 앞날에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이고 두 주먹을 쥔 채 펴지 않음은 세상 갖은 욕망과 허욕을 한 손에 움켜쥔 채 쥐락펴락하고 싶은 인간 본능적 욕심 때문일 게다. 생의 경지에 올라 생의 독공을 하기 위한 인간의 첫 몸부림일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시어 평생 주군으로 받들어 섬기시던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칠십 평생을 살면서 해를 따라 돌며 피는 한 송이 해바라기처럼 눈길 하나 흐트러짐 없이 오로지 유일신만을 우러러 바라보며 한 점 티 없는 삶을 추구해 나아가셨던 영원 사제의 농담 섞인 말씀이 떠오른다. 그분께서는 살아생전 어느 한순간도 얼굴을 찌푸리시는 모습을 뵙지 못했는데 늘 공식적 석상에선 누구라도 항상 밝은 생활의 표본을 보이라는 뜻인 듯 당신께선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적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리 활짝 웃으며 태어났다고 하셨다. 이 어른의 말씀대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면 굳이 울음을 울며 태어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세상 한 켠에서 들리는 풍설에 따르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면 어김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는 이유는 밝은 영혼을 지닌 신생아이기에 평생을 살면서 자신이 겪어야 할 수많은 시련과 고난의 그림자를 한눈에 볼 수 있음이라 장차 자신의 장래에 닥쳐올 갖은 운명의 장난질을 뻔히 보면서도 속수무책 대처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가엾고도 불쌍하여 그토록 서럽게 울어댄다고 하였고 혹은, 자신의 생애에 맵고 짜며 때로는 쓰디쓴 인생의 고초와 시험이 밀물과 썰물처럼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미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도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음이라 손 놓고 방관시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애가 타고 안타까워 크게 소리 내어 운다고 하더라만, 기왕에 인간의 힘으로 세상 운명의 물꼬를 거슬러 돌릴 수 없을 바엔 차라리 환히 웃으며 태어나 초대면 하는 모든 이들에게 더 밝고 희망적인 표정으로 대해주었으면 한층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몸 붙여 살다가 돌아갈 시점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몫의 인생을 살았든 아니면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와 희생적 삶을 살았던 사람이든 세상의 떠날 때의 모습만큼은 거의 흡사하다. 간혹, 질경이 같은 현세의 온갖 연과 사를 쉬 떨쳐버리지 못하고 고목의 나이테처럼 쌓여간 삶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한 채 인생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심히 괴로워하는 이도 있다고 들어왔지만, 대게 삶들의 끝 걸음이 같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표정과 모습들이 조금씩은 차이점이 있고 전 인생을 투자하여 젊음을 밑바탕 삼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생의 희망을 위하고 생의 독공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정점을 통과하기 위하여 전력투구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인생의 경지에 오르기 위함이고 삶의 독공을 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사람이 세상에 올 때와 갈 때의 모습은 판이하다.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올 때는 대게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 새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에 모든 사람의 입가엔 웃음이 끊이질 않지만 갈 때의 표정은 정 반대다. 몇십 년 동안 같은 피를 나누어 살아온 혈육의 연과 영영 재회하지 못할 아쉬운 영이별의 순간을 위해 모두가 비절에 빠져 통곡을 한다. 이 밖에 사람이 세상에 올 때와 갈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른 점이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땐 갖은 욕망을 한 손에 움켜쥐려는 듯이 두 주먹을 움켜쥐는데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면 가슴 한가운데 품고 살았던 세상에 대한 온갖 미련을 떨쳐버린 듯 오랜 세월 움켜쥐었던 두 손을 다 펼친 채 돌아간다. 적지 않은 세월 자기 인생을 걸고 그토록 닦고 쌓으려 했던 인생의 수련법인 독공조차 표기하고 내려놓은 채…

 

 세상 대부분 사람이 자신이 세상에 다녀간 표징으로 끝내는 모두가 허상이요, 허욕뿐인 흔적을 남기길 원한다. 본질적으로는 조금의 차이가 나는지 몰라도 판소리 가객들이 득음하기 위한 몸짓과 같은 뜻이 담겨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 고인이 되신 가수, 고 고복수 선생님께서도 청년 시절 가수로 데뷔하시기 전 득음을 쌓고 진정한 득음을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나름대로 몸짓을 부단히 하셨다는 말씀을 고복수 선생님의 유년 시절 고추 친구였던 나의 부친을 통해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부친께서 흘러간 구전설화처럼 추억을 되살려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를 옮겨 전한다면 가수로 데뷔하시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희망이셨던 고복수 선생님께선 유년 시절 고향인 울산에 사셨는데 아침 식사만 하시면 고향 집 뒷동산에 올라 가수로 데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셨단다. 그 후, 그렇게도 가슴 저리게 소망하셨던 가수가 되셨고 우리나라 국민의 귓전에 맴돌 영원불멸의 히트곡을 부르시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이 실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옛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가지만, 생의 득음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만 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본보기로 남을 것이다. 또한, 시대가 변하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윤택해졌지만, 참을성이 실종된 지금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이들 삶의 지표로 정하여도 별 손색이 없을 만한 이야기라 여겨진다.

 

 젊은 시절 남달리 끼도 많고 화색이 짙어 뭇 여성 선망의 대상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나의 모친을 비롯한 적지 않은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아프게 하셨던 나의 부친은 혈률 인 부자지간을 떠나 같은 남자의 시각과 판단으로 보고 느꼈을 때 남자 중의 남자였고 기남 중의 기남이셨다. 부친께서도 어린 나이에 내겐 조모 되시는 모친을 병마에 빼앗겨서 해야 할 공부도 제대로 못 한 채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갖은 고생을 한 몸으로 다 받아내며 어린 동생과 청춘에 홀로 되시어 두 아들 고생시키기 싫다. 시며 재혼조차 거부하셨던 부친의 생계를 고스란히 책임져야 했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신 끼만은 내다 버릴 수가 없었다. 해서 생계의 수단으로 택하셨던 철공 일을 하시면서 젊음의 열정만은 썩힐 수 없어 고향 친구가 앞서간 가수의 길을 걷고자 했으나, 세상만사 사람들 마음먹은 뜻대로 되는 일이 쉽지 않듯 부친의 그 꿈도 몇 해 봄날의 일장춘몽으로 현실의 냉혹함 앞에 허무하게 깰 수밖에 없었다. 운동으로 두 번째 인생의 꿈을 실현해 보리라 다짐하고 운동선수로 입문하여 복싱선수로 몇 년을 열심히 뛰었고 수년에 걸쳐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당시 모 신발공장 축구팀 감독직도 겸하셨으나, 갖은 풍각쟁이 잘 풀리는 것 못 봤고 손재주 많은 사람 잘사는 거 못 봤다던 속언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듯 두 번째 생의 목표조차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인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뭇 인생의 진로는 하늘이 쥐고 있기에 우리네 삶이라 하여도 우리 인간의 얕은 생각으로는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라 인간의 갖은 얕은 생각을 포기했을 때 정작 우리 인간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곳에서 꼬인 실마리가 풀리듯 그렇게도 애써 찾아 헤맸던 부친의 한평생 인생 진로를 눈앞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부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 막연하게 생계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철의 기공 길이 부친 생의 참된 길이었다. 부친은 가수와 운동선수의 꿈을 접고 참된 철도원이 되고자 우리나라 철도 역사가 정식으로 출발하기 이전에 철도원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박봉에도 부친은 철도원의 책임과 도리를 다하신 부친은 그 후 철의 최고 기공 장이라는 명예스러운 칭호를 받으신 바 있다. 결국, 나의 부친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방황 끝에 철의 득음을 하신 셈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했던가, 나 역시 부친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부친의 끼와 화색 역시 물려받는 것은 당연지사 생의 선택권을 자의로 가질 수 있는 나이도 되기 전 병마의 풀 수 없는 혹독한 족쇄에 채워진 채 연습도 복습도 없이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의 진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아무런 일도 손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문학도의 길을 걷게 되었고, 참된 문인이 되기 위한 밑 작업을 나름대로 충실히 했으나 자의로 애가 타도록 원해서 택한 길이 아니라 그런지 적지 않은 시련과 고난들이 나의 생의 앞길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나 또한, 내 부친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어떤 시련의 바람이 거친 폭풍과 폭우가 밀물과 썰물로 내가 나아갈 길을 가로막고 힘들게 하여도 수많은 독공을 쌓아 문학의 득음을 하리라. 인생을 걸고 굳게 다짐한 바 있다. 35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문학도의 도리와 의무를 다하려 부단한 노력과 서툰 몸놀림을 했었다. 황금을 길섶에 구르는 돌보듯 하면서 몇 줄 글로써 뭇 영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줄 의무를 지닌 문인이 되고자 끊임없는 습작으로 오늘에 이르렀고 과거가 없는 현재는 존재할 수 없듯 과거와 현재를 이어놓는 이음새였다는 명예스러운 호칭의 소유자로 남고 싶어 현재 몇 알의 먹이를 쪼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한 마리 새가 된 양, 손이 아닌 입으로 집필하고 있지만, 육신이 아닌 영혼으로 쓰는 문학도로 독자들의 영혼 속에 살아있기를 소망한다. 인생의 황혼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