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松竹/김철이 2020. 4. 22. 09:29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지금의 어두운 시기가 깊어질 무렵 우리 귀에는 한 무리의 이름이 유명했습니다. 그 단체의 이름은 하느님의 심판을 통한 새로운 세상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들은 언제나 있었고 또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그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이 부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부활은 심판이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진 사건이고, 이 부활의 과정 안에서 그 때의 사람들은 모두 심판 앞에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버렸고 모른척 했으며 심지어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지 못했고 끝까지 의심을 했던 이들입니다. 


지금 새로운 종교를 외치고 믿음을 말하는 이들은 그 때부터 전혀 희망 없는 이들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은 것이 우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일 아닐까요? 


우리가 구원을 꿈꾸고 누군가는 그것을 자신있게 약속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믿음 속에 담긴 뜻은 '심판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누구나 심판 주를 기다린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 드러난 하느님 아들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직접 경험한 하느님의 실제였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은 심판할 모든 권한을 가지셨으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당신을 소개하셨으며 그 내용은 사랑하심이었습니다. 곧 아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우리를 하느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시려 노력하셨습니다. 마지막 당신의 생명조차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맡기신 주님의 모습은 심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전해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하느님의 심판을 말하며 그 심판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도식을 전하며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를 냉정한 자리에서 칼날 같은 심판으로 거의 다를 지옥에 보내실 분으로 만들어가며 극소수의 구원받을 자를 세상에서 먼저 골라내듯 모집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렇게 하느님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옥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정의는 다른 어떤 설명보다 효과적이긴 합니다. 두렵게 하고 떨리게 하며 사람을 간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노아의 홍수 때의 사람들과 열명의 의인을 가지지 못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말하며 지독한 지옥을 모든 이의 머리 위에 끼얹는 무자비한 심판을 들이대는 이들은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과 벌을 전하여 사람들을 죄인으로 내 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심판 속에 갇힌 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누구를 따른다거나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구원할 자격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말하는 일을 그만두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을 심판했고 또 영적으로 죽여 버렸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본 것은 심판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가올 심판은 바로 그런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입니다. 곧 사랑하는 분이 그 사랑을 기준으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게서 배운 사랑을 기준으로 심판을 그려내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랑이므로 그 사랑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가르쳐야합니다.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과 그들 곁에서 그토록 잔악한 구원을 누리고 있는 이들은 듣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