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松竹/김철이 2020. 1. 28. 08:28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일종의 '무리' 혹은 '공동체'라고 불리는 집단을 이루며 그 관계의 근본을 '가족'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관계보다 가깝고 '일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 가족입니다. 곧 따로 있어도 곁에 있거나 함께 있다고 여겨지는 최소의 단위가 되는 것이 '가족'입니다. 


우리가 읽은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가족'이 누구인가를 두고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이지만 그분에게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었을테고 그 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가 곧 하느님께도 가까울 수 있다는 자연스런 설정이 가능합니다.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어도 결국 그 관계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교에 입학 할 때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결국 효자는 신부나 수녀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자식이 자신의 가족을 이루며 멀어지지만 그 단계를 가지지 않는 유일한 이들이 결국 부모를 챙길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름의 경험과 목격담을 포함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에서도 사람들은 같은 시선을 가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막아설만큼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중요한 사람들로 가족을 소개합니다. 우리 보다 먼저인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했고 누구도 이런 생각에 다른 의견이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례 그 방향으로 길을 터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리를 비키려는 이들에게 물으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사람이 태어나서 맺게 되는 관계들은 경우에 따라 영원히 이어지는 것도 또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그 관계가 어떤 의미도 없음을 말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들 안에 있음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이 그 말씀의 중심이라고 해서 어떤 관계가 그로부터 순서가 정해지는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누가 중요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 곧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듣는 이들은 이 말을 하시는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것을 알고 자신의 위치를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이 말씀을 '저들은 아니다'라고 알아듣는 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을 멈추고 오히려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들은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임을 알아듣기를 바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이 여기 계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자신 중심의 관계처럼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들을 정리합니다. 그래서 성직자가 자신의 소명이 아닌 사회적 위치로 자신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는 왜곡이 일어나는 일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족부터 친한 사람까지 모두가 그런 관계로 하느님으로 연결되는 오류는 늘 진행중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누구는 말씀을 전해야 하고, 누구는 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역할이 하느님과의 거리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듣고 고백하며 그 시간을 함께 한 이들과 같은 관계를 고백하는 우리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그 말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