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松竹/김철이 2020. 1. 22. 11:5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의 평일은 우리 안에서 늘 생활하셨지만 우리가 주일을 지키듯 예수님도 안식일을 충실히 지키셨습니다. 안식일에 주님은 회당에 가셔서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셨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 안에서 생활하는 하루입니다. 그런데 그 날을 그저 '회당에 가서 기도하는 날' 곧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새겨 들을 이유가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를 사람들 가운데로 불러 내십니다.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존재는 이미 '관심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를 만나면 낫게 해 주시리라 짐작했고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분명 안식일법을 어기시는 것이라 단정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마음을 먹은 모든 이의 생각을 드러나게 하시면서 동시에 안식일이 어떤 날인지 알게 해주십니다. 곧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안식일에 대해 드러내심으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우리가 당연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우리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대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나신 얼굴로 그들을 둘러 보십니다.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가진 이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 지켜온 하느님에 대한 자세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이 내민 대답은 '침묵'이었습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은 '죽은 날'이었습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진 안식일 법에 그들은 누구를 도울 수도 목숨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날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돕고 사랑하는 것조차 안식일에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로 연결됩니다. 그날 그들은 그저 존재하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기도할 뿐 누구의 불편함도 허기짐도 돌보지 않는 '죽은 듯'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날이 생기를 잃고 누구도 살아있지 않은 듯 머물러 있는 것으로 그 날의 기운을 가득 채우고만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굳게 닫힌 입술은 예수님의 사랑에 정해진 수순을 밟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을 펴 주시고, 그로 인해 예수님도 손을 편 이도 미움을 받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사랑하는 것이 안식이라는 이유로 죽을 죄가 되어 버리는 이스라엘의 현실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그러나 그 사랑이 누군가의 선행도 죄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하느님을 믿으며 우리가 말하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오히려 그 잔인하고 무서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받기 위해 사람이 얼마나 독하고 무심해야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죽음의 이유가 단지 무죄하다라고만 말할 수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