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松竹/김철이 2020. 1. 21. 12:56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던 예수님의 일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지나치던 밀밭의 이삭을 뜯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그 밀을 뜯었던 이유는 '먹기 위해'였습니다. 복음 속 문화는 우리와 달라서 우리에게 그 밀밭은 '남의 밭'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 밀밭은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것'이 가치입니다. 



그런데 복음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시선은 그들이 지키는 '안식일'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곧 안식일에는 밀을 뜯는 것이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곧 '추수'를 하는 행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예수님의 일행에 주어집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하느님이 정해주신 안식의 날. 창조가 끝나고 하느님께서도 쉬신 날에 피조물인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고 그 날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일행은 밀 이삭을 뜯으면서 이 거룩한 날의 법을 어기게 되었다는 것이 바리사이들의 시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혀 다른 이유로 설명을 시작하십니다. 그것도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다윗'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하느님께 바쳐질 거룩한 빵에 손을 댄 다윗의 행동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고 묻는 예수님 속의 다윗은 이미 그 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여기며 공경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곤란한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윗의 행동으로 말하고자 하신 내용은 '정당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안식일이 어떤 날이 되어야 하는지'가 예수님이 던지신 반문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채우는 모든 가치는 '하느님'입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충실한 종 다윗은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사제만 먹을 수 있는 빵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한 일이 아니라 알면서도 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규칙이 무너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곧 다윗은 '죄'를 지어 허기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배고픈 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 죽음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것이 맞는 것인지를 이야기하시는 예수님께 바리사이는 어쩌지 못합니다. 




지금의 사람들에게 이런 예수님은 참 골치아픈 분입니다. 그냥 지키면 될 일인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인 가치가 되어 버리지 않는가? 허기를 어떻게 잴 수 있고 그것이 먹을 것에 대한 탐욕과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를 논하는 사람들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일행이 한 행동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리하고 과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배고픈 이에 대한 배려는 율법에도 존재하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근본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율법을 무시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과 율법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하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을 위해 생긴 법이 사람들 위에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참 많이도 겪었던 우리에게는 이 복음 말씀이 훌륭한 가르침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가르침을 아직 알아듣지 못하고 무시하며 오히려 법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