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松竹/김철이 2020. 1. 24. 12:14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늘을 우러르며 살았고 그 하늘에 대한 기원을 본능인 듯 여기며 살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하느님이 허락하신 영원한 삶을 알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지는 가치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모두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지만 그분은 당신을 알리러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알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보다 당신 이름이 가진 가치에 충실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가르치시고, 기도하시며, 우리에게 봉사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을 알고 느끼고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와 함께 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과 악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방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결국 죽음으로 예수님을 막아서려 했지만 악마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당황할 만한 방법이었습니다. 


악마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방해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이나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진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사람들과 예수님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했습니다. 악마가 우리에게 소개한 예수님은 이랬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같은 말이 전하는 느낌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주님을 아는 우리에게 이 표현은 우리와 함께 하신 하느님.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뜻하지만 그 때 이 표현이 가져오는 효과는 주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곧 사람들과 함께 할 분이 아닌 분이 여기에 계시고 그분이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은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 표현에 사로잡히면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증명하시는 분이고, 증언하는 분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존재하는 위대한 사람을 보게 되고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그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점점 더 자신들 보다 높이 여기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도 좋아하는 일이고 예수님을 대할 때 그렇게 낯설지 않은 표현과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악마로부터 전해진 가르침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과 우리의 거리를 얼마나 멀게 하는지. 우리를 구원으로부터 간절히 원하게 할만큼 거리를 띄우고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추켜 세울수록그러하고 또 그분과 연결된 사람들에게도 같은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우리 안에 사셨고 우리는 그분과 같은 삶을 살면서 우리가 사는 곳과 이 삶이 하느님께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되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삶에서 벗어나 주님께 향하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몰아 버리려 했으나 주님은 그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천사였다던 악마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습관을 알고 진실을 전하며진실에 눈이 멀게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시도에 눈과 마음이 막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그들의 시도는 대단히 효과적이며 우리를 하느님께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