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그 나이 아흔아홉/(수필)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9. 12. 28. 13:52

나이 아흔아홉

                                  

                                             김철이



 


 3, 1절(三一節)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오늘날 이렇게 보배로운 이 나라, 은혜로운 이 땅에서 두 다리 길게 뻗고 옛말 이어가며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 만세를 불러주신 순국선열들의 송구한 희생이 있었던 덕분이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거센 불길 되어 일어난 지 아흔아홉 해 되는 해다. 삼일절 그 나이 아흔아홉, 인생 연륜으로 따지자면 세상 단맛 쓴맛 다 본 나이인 백수(白壽)를 훌쩍 넘긴 나이다. 이렇듯 삼일절의 나이는 상수(數)를 향해 쉼 없이 먹어 가는데 구십구 년 전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맨손으로 일제의 총과 칼에 맞서 미친 듯이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터져라 “대한 독립 만세!”로 민족과 겨레의 가슴에 목숨까지 바치셨던 숱한 순국선열의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불로초를 삶아 먹었는지 유독 우리나라 국민의식은 나이 먹기를 거부한 채 지학(學)보다 더 어린 철부지로 사는 것 같다.

 

 숱한 순국선열들이 피 흘려 찾아주신 금수강산, 이 옥토는 열사들이 흘렸던 핏자국이 채 말라 지워지기도 전에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단군 할아버지 슬하에 함께 나눈 살점이 아프다고 가슴이 아파 죽겠다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우리 민족, 우리 겨레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강대국들의 농간으로 허리가 두 동강이 되어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서슬이 시퍼런 총구를 맞대고 같은 단군의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고 있다는 것이다. 아흔아홉 해 전, 순국선열들이 이러라고 목숨을 초계처럼 던졌던 것일까…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던 육이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나이도 벌써 환갑() 진갑(甲)을 다 보내고 고희(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육십팔 년 전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얼마나 큰 슬픔과 아픔들이 전 옥토에 늘려 흐느꼈던가, 누구를 위해 그어진 삼팔선인지 모르지만, 그 삼팔선은 핏빛으로 물든 지 오래전인데 마주 선 총, 칼은 더욱 빛나고 생가슴이 찢긴 부모 형제의 신음은 아직도 가실 줄 모른다는 것인데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부질없는 총질로 부모 잃은 전쟁고아들이 겪어야 했던 몸서리 쳐진 아픔도 그러하고 고향을 북한에 두고 피난 온 실향민들이 삶의 고뇌처럼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애환들은 그 누가 보상해 줄 것인지…

 

 세상이 살기 좋아져서 그런 것인지 반대로 야박하고 복잡한 세상사를 눈감고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우리나라 국민의식은 하나같이 죄다 치매 환자 수준이 아닌가 싶다. 잊을 걸 잊어야지. 부여된 한 생애를 살다가 좁디좁은 무덤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른 세상에서 갖은 희로애락 다 겪으며 살았으니 본인이 태어났던 그 나라 그 겨레의 국민으로서 살았던 본분만을 되새기며 조용히 세상만사 다 잊으라는 뜻도 포함된 것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살아생전에도 본분을 망각하고 불행했던 과거 역사는 애써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어느 일정한 날을 국경일로 제정하는 뜻은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라는 것인데 일부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무리 우리나라 역사에 이바지한 국경일이라 하여도 단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 편히 쉬는 날의 의미밖에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아흔아홉 돌을 맞은 삼일절에 관한 의미도 마찬가지, 세월이 점차 흘러가니 그날의 아픔과 상처도 점차 아물고 가시어 가겠지만, 그렇다고 그 날의 소중한 의미와 민족과 겨레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셨던 순국열사들의 고귀한 희생마저 잊으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일본 역사마저도 조선 땅이라고 엄연히 기록돼 있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한국인들의 근성은 양은 냄비와 같아서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잠시 와글대다 말 것이니 바다에 떠 있는 독도를 끊임없이 자기네 땅이라고 생떼를 쓰다 보면 물결에 밀려 일본 땅이 될 거라는 더러운 침략 근성을 드러내는 이 판국에 그 옛날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전역의 정기 좋은 산맥을 찾아 조선에서 훌륭한 장수나 특출한 인물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좋은 정기가 흐르는 산의 산맥마다 쇠말뚝을 박아놓았다고 했는데 우리가 지금 그 어처구니없는 일에 동조라도 하려는 듯이 매국노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게 행하고 있으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금수강산 맑은 옥수 속에 구린내 진동하는 물똥을 싸놓아도 유분수지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두 글자와 국적조차 분명치 않은 각종 중장비 앞장세워 멀쩡한 산허리 꺾어 두 동강 내놓고 가만두어도 제 갈 길 잘 찾아갈 물꼬를 애써 돌려놓으니 아무리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들도 제 머물 둥지를 찾아 헤매고 시시때때로 강을 찾던 철새들도 동, 서, 남, 북이 헷갈려 강둑에 쉽게 내려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며 이십사 시간 물을 떠나지 않는 각종 민물고기도 밤잠도 재우지 않는 각종 중장비 굉음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생존을 이어갈 산란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멸종위기에 놓인 어종도 점차 느는 추세라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옛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국민은 아무리 하찮다 하여도 현재 눈앞에 놓인 것에 더욱 소중하고 더욱 감사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신문기사를 통해 소개된 세계 명성지를 찾아서라는 보도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영국의 어느 도시에 천년 세월을 옛 모습 그대로 지켜가며 관광명소로 꿋꿋하게 자리 잡은 골목길 한 곳이 있다고 했다. 엘리트 근성과 세계 선진국 중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생활하는 영국 국민들은 도심지 개발의 붐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 닥쳐도 전혀 흔들림 없이 조상들의 얼과 혼을 지켜가듯 열성을 다 받쳐 골목길을 애써 가꾸며 단장해 왔다는 것이다. 영국의 그 골목길의 역사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않은 의미와 역사를 지닌 골목길이 있었는데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어느 민족의 역사를 위한 것인지 몰라도 육백 년이나 된 골목길 피맛골이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몇 줌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는 것이다.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능히 깨달을 터, 먼 훗날 관 뚜껑 열고 들어가는 날 민족과 겨레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갈바람에 날리는 갈잎처럼 여겼던 숱한 순국선열들의 얼굴을 어찌 우러러 뵐는지 걱정이 태산 같겠네.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와 흡사하게 먹거리를 비롯한 외국산 생활필수품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우리나라 시장을 죄다 점령하려 드는 이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을 위해 인생 전부를 투자해야 할는지를 류관순 열사의 옥중 편지를 여기에 모셔 반성의 계기로 삼아보자. 아흔아홉 해 전 류관순 열사는 십 대 소녀에 불과했는데 어디서 그렇게 당차고 매서운 언행이 터져 나왔는지 그 시절 잔악하기로 악명이 높고 그 위상이 더 높아 하늘을 날던 새도 단숨에 떨어뜨릴 정도였고 악을 쓰며 울던 철부지 아이들도 그 이름만 들어도 순식간에 울음을 그치게 했던 일본 순사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불과 몇 줄의 글귀로 아흔아홉 해를 맞은 삼일절에 얽힌 사연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힐 줄 몰랐다. 이 한 편의 수필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나 되어 류관순 열사의 얼을 물려받았으면 하는 소망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