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악연을 필연으로/(수필)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9. 12. 9. 17:53

악연을 필연으로


                                                    김철이

 

  한평생 우리가 걸어온 인생의 뒤언저리를 한 번쯤 되돌아보면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어느 자리에 박힌 표석(標石)이나 어느 공중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아주 단단한 목표를 지녔거나 구체적인 꿈을 지닌 것이 아니라 몇 개의 단어와 단어들이 거느린 흐릿한 이미지 단어들 사이의 그리움이었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 인연중에는 악연(惡緣)과 필연(必然)으로 나누어져 제각기 세상 갖은 인생의 희로애락 속에서 온갖 고뇌를 파생(派生)시키며 모든 인생살이를 죄다 쥐락펴락하려 한다는 것인데 나에게 혼자 파라다이스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 라고 했던 괴테의 명언처럼 잘 났건 못났건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진리를 되새김질하며 60년 만에 돌아오는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띠(狗)의 해, 새해 벽두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단어적 교훈으로 개도 제 주인은 알아본다. 라는 속담도 있듯이 세상 모든 사람의 연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자는 뜻에서 가물거리는 기억을 가다듬어 내 나이 여섯 살 때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적어보련다.

 

 58여 년 전 나의 어머니와 큰딸의 이름을 덧붙여 옥이 엄마라고 불렀던 홍 00씨 아내와의 사이는 처음 대하는 이들의 눈엔 마치 우애 깊은 동서지간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게 할 정도로 두 여인의 사이는 남달랐다. 진옥 아주머니는 첫째 딸인 진옥이 아래로 딸 둘을 낳고 아들 하나를 낳은 후 딸아이 하나를 더 낳으셨는데 이 딸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무렵의 일이었다. 아들 선호사상이 깊었던 시절이라 시댁에서 아들 하나 더 낳아주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처지였는데 동지섣달 칼바람이 허술한 문틈으로 쉴 새 없이 들락거리던 한겨울초저녁이었는데 세탁한 빨랫감을 다름질하고 계시던 우리 어머니 귀에 얼핏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멈추더라는 것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한 예감이 들어 홍 00씨 일가가 거처했던 우리 집 뒷방으로 급히 달려가 보니 홍씨 아주머니가 위로 다섯 아이를 재워 놓고 홀로 막내딸을 낳아 탯줄도 가르지 않은 채 넋을 잃고 마냥 내려다보고 있어 왜 이러고 있냐고 물으니 낳고 보니 또 딸이라 시댁의 질책이 두려워, 낳다 잘못됐다 거짓을 행하기로 하고 아기에게 가족들 몰래 몹쓸 짓을 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어머니께서 크게 노하시며 하늘이 내리신 생명인데 어디 할 짓이 없어 천벌 받을 짓을 하냐며 꾸짖으시고는 아기의 탯줄을 끊고 목욕을 시킨 다음 산모의 미역국을 끓여주셨으며 산모의 산후조리가 끝날 때까지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신 바 있는데 어머니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은 대단히 감동적이거나 영웅 같은 행위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진심이기에 비록 악연으로 만났던 이에게도 필연으로 대해 주셨던 것이다.  


 선천적으로 여린 본성을 타고 났던 탓에 눈물과 정이 많았던 우리 어머니와 여인의 인성을 타고 났지만,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강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진옥 엄마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났던 탓에 악연으로 만났지. 평온한 시대를 타고 났다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인연으로 한 생을 살았을 두 여인이었다. 타고 난 성향이 정반대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서로가 양보하며 잘 맞추어 살았던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점으로 남는 당시 생활상이었다. 1961년 5월 15일 제6 관구의 전 사령관이었던 박정희에 의해 시작된 군사 혁명은 명목적으로야 부패한 정권교체와 정국안정에 있었지만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희생자의 피맺힌 눈물이 하늘을 울렸고 땅을 울렸던가! 시대의 흐름을 따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분으로 만나야 했던 우리 어머니와 진옥 엄마 역시 5, 16 역명의 피해자임이 분명했었다. 두 여인은 철도원을 천직으로 여기며 철도청에 충성을 다 했던 가난한 철도원의 아내였다. 쿠데타 군사력에 의해 1963년 제3공화국(第3共和國)이 수립되면서 스스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오른 박정희는 자신도 없는 가문에서 없이 살아봐 놓고 없이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그렇게도 이해하지 못했든지 아니면 없이 생활했던 본인의 처지를 망각했던지 모르지만, 똥개가 들어도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를 터뜨릴 정책을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전직 철도원에게 낡고 허름한 철도관사를 구매하여 부모님의 갖은 희생으로 집다운 집으로 리모델링하여 마냥 행복하기를 꿈꾸며 가난 가운데 다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아직도 눈앞에 선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곤 하는 데 없는 살림살이에 몇 되지 않은 자식새끼와 등 붙여 살 수 있는 집 한 채 갖는 것이 평생소원이었고 전문 미장이와 목수에게 집수리 의뢰해 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단 몇 분 시간의 여유만 생겨도 밤, 낮 가리지 않고 30여 분의 거리를 도보로 걸어가서 미장이 목수일을 자청해야만 했다. 손톱이 잦아들고 손바닥에 두툼한 굳은살이 절로 박이는 고통의 나날이 더해져 마침내 폐가나 다름없던 당시 부산시 연제구 연산5동 철도관사 16호의 1은 어느 자택보다 아담하고 깨끗한 집으로 변모되어 갔다. 본디 심장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그 집으로 이사를 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쓸고 닦는 것이 삼시 세끼 밥해 먹는 일을 제외하고는 으뜸의 일과가 되었을 정도로 16호의 1에 대한 애착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시대의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더라면 정신병자라고 손가락질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머니의 그 희생과 사랑은 가족들에게 크나큰 심적 안정을 안겨다 주었다.


 당시 100여 호가 넘는 동네 주민을 상대로 갖가지 야채나 건어물 등을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던 행상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우리 형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돌이네 집에 가면 통시에 떨어진 밥알도 주워 먹어도 탈이 안 생기겠더라." 라며 과찬을 늘어놓는 통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을 깨끗한 집의 모델하우스로 방문하거나 이웃 아저씨들이 취중에 “니는 밥 묵고 온종일 뭐하노? 돌이네 가봐라. 통시에서도 밥알을 주서 먹고 온 집안이 얼마큼 깨끗한지 파리가 낙상할 지경이라 안카나 돌이 엄마한테 가서 좀 배워가 온나” 하며 자기 아내들에게 핀잔을 주는 웃지 못할 일화까지 발생하곤 했다. 이러하듯 어머니에게 철도관사 16호의 1은 삶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 욕심만 한 것 외에는 더 좋을 것이 없다지만 당시 우리 어머니에게 있어 철도관사 16호의 1은 자식 욕심에 버금가는 욕심의 존재였다. 이러한 존재를 비합리적인 국가 정책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름도 성도 모르는 타인에게 통째 내어주어야 할 위기가 닥쳤으니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미치지 않고는 제정신으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개인의 힘이 막강하다 해도 국가와 나라의 권력엔 대적할 수 없는 법이기에 결국 철도공무원 5급 에겐 철도관사를 배당할 수 없으니 4급 공무원에게만 배당해야 한다는 당시 엉터리 군사정부 정책에 애지중지했던 집을 홍 00씨에게 빼앗겨야 할 위기에 처했으나 남달리 배포(排布)가 크셨던 우리 아버지의 뱃심 덕분에 우리 삼 남매는 살을 예의는 듯한 추위에도 떨지 않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겨울을 날 수 있었지만, 군사정부 권력만 등에 업은 채 본가를 헐값에 팔아넘기고 남의 제물을 탐욕을 부렸던 탓에 아래 직급인 우리 아버지 앞에 코를 밖은 채 무릎을 꿇고 사정사정해서 구걸하다시피 하여 우리 집 뒷방에서 그해 겨울만이라도 나게 해 달라는 허락을 받은 홍 00씨 일가와 우리 가족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게 된 셈인데 일명 후시마 문으로 불리는 그다지 굵지 않은 몇 가닥 나무에 벽지를 덧붙여 만든 문 하나를 사이에 놓고 실질적으로 우리 집에서 가장 큰방이었던 다다미방과 뒷방은 생활 조건상 하나의 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모깃소리만큼 작게 내지 않은 한 상대 가족 간의 대화 내용을 죄다 들을 수 있는 생활 여권 속에서 양가 아이들의 불화는 드물게 있었지만 두 엄마의 불화는 전혀 없었다.


 인력으로는 무작정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시대의 흐름을 가로막을 수 없는 법이기에 한 가정 가족들의 아픔은 아랑곳없이 무심히 달아나는 시대의 흐름을 이겨낼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피눈물을 흘리며 구조 어느 한 곳 내 부모의 피땀이 서려 있지 않은 철도관사 16호의 1을 홍씨 일가에 내어줄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어머니와 진옥 엄마는 악연을 필연으로 성화시킨 위대한 여인들이 아니었나 싶다. 두 여인 중 한 사람인 우리 어머니는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진옥 엄마의 생사를 알 수 없는 현실에서 가끔 그 시절 그 모습들이 떠올라 혼자 허탈한 미소를 짓곤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악연을 필연으로 성화시키지 못해 소중한 생명을 희생시키며 권력을 잡았으나 우리 어머니와 진옥 어머니는 양보할 것 양보하고 내어줄 것 내어주며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 중에 인간과 인간의 인연이 으뜸이라는 교훈을 몸소 실천하며 사셨던 두 여인의 영혼에 찬사를 보낸다. 이제 무술년 한 해의 문도 열렸으니 해맞이할 때의 그 벅찬 기쁨을 온 국민이 다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황금 개띠(狗)의 해, 대한민국 전 국민이 서로 양보할 것 양보하고 내어줄 것 내어주며 내 이웃을 돌아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