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숨바꼭질 제4화 다람쥐 남매/(동화) 아람문학

松竹/김철이 2014. 5. 12. 13:25

숨바꼭질 / 제4화 다람쥐 남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은 화천리 아홉 개구쟁이 악동들에겐 지루한 감옥살이를 했던 것처럼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어요. 여느 마을보다 공기도 맑고 깨끗한 생활환경 덕분에 겨우내 쉼 없이 내려 온 마을이 온통 하얗게 쌓여가는 눈 때문이었죠. 보통 삼, 사월까지도 마을 곳곳에 쌓여 있는 잔설을 볼 수 있는데 지난겨울엔 유별나게 많이 내려 어른 허리까지 쌓여가는 눈 산 탓에 화천리 아이들이 밤마다 한데 어울려 동심을 키워가던 숨바꼭질을 전혀 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 숨바꼭질은 화천리 다섯 가구의 가족들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생활에 많은 불편을 주기도 했었지요. 그렇지만, 고장이 나지 않는 세월은 좀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추위의 옥살이에서 화천리를 풀어주었지요. 물론 몇 달 동안 거의 방안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화천리 아이들에게도 반가운 새봄이 찾아와 주었고요.  

 

 물 맑고 산수 좋은 화천리 산골 마을을 무대 삼아 마냥 티 없이 뛰노는 아홉 악동과 어깨동무하고 놀고 싶어 새봄이 찾아오니 온통 눈 동산을 이루었던 마을 이곳저곳에 갖가지 색깔과 향기로 봄꽃도 피기 시작하였고 추위를 피해 강남 갔던 제비 가족들도 날아들어 새 둥지 단장에 한참 정성을 쏟으며 지지배배 거렸지요. 온갖 꽃과 풀과 나무들이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 앞다투어 싹눈을 뜨고 잎을 피워갔어요. 갖은 산새 들새 다 모여 노래하며 춤추는 새봄의 뜰 안에서 한 해의 새봄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리는 듯  하였고 화천리 아이들의 숨바꼭질도 새로이 시작되었어요.

 

무척이나 오랜만에 하는 숨바꼭질이라 화천리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해가 지기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저녁 해가 새빨간 꼬리를 감추며 서산마루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화천리 악동들은 하나같이 엄마를 졸라 이른 저녁밥을 챙겨 먹고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는 동산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어요. 워낙 공기가 맑고 깨끗했던 덕분에 사계절 늘 푸르고 잎이 지지 않는 소나무 뿌리 부분엔 아직 내렸던 눈이 다 녹지 않고 가로등 하나 없어 몹시 어두운 화천리 야산을 희미한 회색빛으로 밝혀주려 애를 쓰고 있었어요.

 

경화: “우리 조금만 놀다 들어가자 아직은 밤공기가 차니 말이야.”
철민: “어제 우리 아빠가 읍내 장에 갔다 들으셨는데 요즈음 독감이 극성이래”
깨숙: “맞아 밤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감기에 걸려 엄마 아빠 걱정시키면 안 되지!”
영수: “한 해 겨울이 의미 없이 훌쩍 지나간 건 아닌가 보네 깨숙이 철든 걸 보니”
용구: “그러게 우리도 빨리 철들어야겠네”
민서: “그런데 오늘 밤엔 소쩍새의 울음이 유별나게 구슬피 들리는데”
숙자: “그만큼 봄이 깊어갈 거라는 의미가 아닐까?”
예민: “너흰 소쩍새가 천연기념물인 걸 아니?”
종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누가 있어? 널 빼곤 말이야.”

 

 그랬어요. 지난겨울 살을 예의는 듯한 혹독한 추위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고생했음인지 그 아픔을 되새김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까요. 모처럼 숨바꼭질하는 화천리 아이들의 귓속으로 저며들 듯 들리는 소쩍새 울음은 왜 그리도 구슬펐던 지요. 그런데 숨바꼭질을 하다 말고 소쩍새 구슬프고 애잔한 울음소리에 온정신이 팔려있던 화천리 아홉 아이의 천진난만한 눈속으로 예상치 못한 모습이 찾아들었어요.

 

 추운 동장군은 시절의 뒷켠으로 물러나 앉았다지만, 아직도 응달진 곳곳에는 설 녹은 눈이 마치 전쟁에 패하여 갈 곳도 올 곳도 없는 군인들처럼 우두커니 늘려있었고 겨우내 먹이가 모자라 허기진 배를 안고 먹이를 찾아 헤매던 크고 작은 산짐승들이 가끔 사람이 생활하는 주위를 맴돌곤 했었는데 그날 밤도 어떤 배고픈 생명체가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려고 준비 중인 아름드리 소나무 뿌리 위에서 곰삭아 물기에 젖어있던 해 묶은 낙엽이불을 저 쳐내고 불쑥 뛰쳐나온 것이었어요.

 

용구: “캬악! 이게 뭐야”
영수: “용구야! 왜 그래? 괜찮아?”
민서: “사내대장부가 놀라긴,”
예민: “또 별거 아닐 거야 꽃샘바람이 우리가 즐겁게 노는 게 심통 나서 해 묶은 낙엽을 날린 거겠지!”
경화: “용구야! 정말 그런 거야? 응?”
용구: “아냐! 이번엔 좀 심각해 뭔가 살아있는 것이 내 발을 깔짝대고 있어.”
깨숙: “엄마야! 무서워 우리 숨바꼭질이고 뭐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응?”
철민: “얘는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웬 호들갑이야.”
숙자: “아냐 깨숙이 생각도 전혀 다른 건 아닌 것 같아”
영수: “그러게 지금이 뱀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할 시기이고 독사가 한참 독이 오를 때잖아”
민서: “또 이 시기에 뱀들은 응달을 좋아하는데 이 소나무도 약간 응달진 곳에 서 있고 말이야.”
용구: “뭐! 배~뱀! 도~도~독사! 혀~형! 누~누나들! 나 좀 살려주랴 응?”

 

 용구는 형과 누나들이 자기를 골려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뱀이라는 말에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며 금방이라도 한 다름에 집으로 달아날 자세였어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 라는 속담처럼 화천리가 워낙 외딴 야산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뱀을 자주 접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야밤에 뱀이라는 말을 들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럼, 아홉 악동을 놀라게 했던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지난 겨우내 허기에 시달려온 새끼 다람쥐 남매였어요. 인기척이 드문 야밤을 틈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왁자지껄 아이들 노는 소리를 듣게 되자 호기심이 발동하여 둥지 밖으로 나와 아이들 노는 모습을 잠시 엿보려다 그만 용구의 발등을 건드렸던 것이지요.

 

깨숙: “어머! 이건 아기 다람쥐들이잖아. 그런데 춥고 배고픈 모양이야 떨고 있는 걸 보니”
용구: “에게! 내가 요런 꼬맹이에게 놀라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단 말이야.”
숙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새끼 다람쥐들이 춥고 배도 고프지만, 우리에게 겁을 많이 먹었나 봐”
민서: “그럼 우리 새끼 다람쥐들을 집으로 데려가 먹이도 줄 겸 추위와 긴장을 풀어주면 어때?”
철민: “그건 그렇다 치고 숨바꼭질은 어떡해?”
경화: “숨바꼭질이야 오늘 못하면 내일 또 하면 되지만”
영수: “허기에 지친 아기 다람쥐들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비록, 허기와 덜 풀린 추위에 지친 아기 다람쥐 남매이었고 아직 철부지이고 때론 짓궂은 개구쟁이 노릇도 하지만, 네모난 마음이 아니라 하나같이 둥글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화천리 아홉 악동의 품속에 안겨있는 두 마리 새끼 다람쥐는 세상 어느 생명체보다 행복했어요. 그리고 계절이 피고 지겠지만, 새봄은 변함없이 우리 곁을 맴돌 듯이 화천리 착한 아홉 악동의 착하고 순수한 우정도 늘 변함없이 화천리 산골 마을에 피어 사계를 지킬 것을 약속했어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