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카네이션
김철이
부모라는 이름표는 날 적부터 가슴에 단 채 태어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이 세상 어떤 부모든 유년(幼年) 시절을 거치지 않은 이 없을 것이고 떼쓰며 부모님께 철부지로 살지 않았던 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식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는 것이 세상 원리이기에 먼 훗날 자식들이 늙어 그 자식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는 자식의 처지에 놓여 있을 때에 내 부모님께 어떤 공경을 했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나는 것이 물처럼 묵묵히 흐르는 세상 원리이자 인간사 진리이다. 그 옛날 고려장(高麗葬)이 성행했었던 고려시대에 어머니께서 고려장을 당하실 연세가 되자 자식인 이들은 자신을 위해 한평생 갖은 희생과 고생을 다 하셨던 노모(老母)를 산 채 내다 버리자니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악법(惡法)도 법이기에 나라의 법을 어길 수 없고 형편이 어려워 광중(壙中)에 모실 처지도 못되고 하여 고난의 세월에 물이 빠지고 쪼그라 붙어 한 짐도 되지 않은 어머니를 지게에 싣고 깊은 산중에 내다 버리려고 어린 아들과 함께 산을 올랐는데 노모를 질흙 같은 어둠 속에 내려놓고 지게조차 버려둔 채 돌아서려 하니 철부지 아들이 하는 말, “아버지! 지게는 가져가야지, 그래야 나중에 아버지 나이 들면 나도 아버지를 지게에 실어 갖다 버리지…….” 철부지 아들놈의 한 마디에 홍두깨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아들은 속죄의 눈물을 평평 쏟으며 노모를 지게에 되 싣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관가에 가서 국법(國法)을 어긴 자신의 죄를 고했으나 미물(微物)만 한 그 작은 효성에도 감동하여 아들의 죄를 묻지 않았다는 웃지 못할 설화(說話)를 되새김질 해 보더라도 자식들의 효성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음은 인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숨 한 번 고르지 않고도 단숨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부모님의 자식 향한 사랑과 정성은 정월(正月)에서 섣달까지 매달의 상황에 맞게 노래로 부르는 민요. 월령체(月令體)노래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조선 말기 효에 관한 역대 제현(諸賢)들의 기록을 엮은 책으로 1874년(고종 11) 유학자 박돈행(朴敦行)이 수록, 정리한 효설인용서식(孝說引用書式)을 인용해 보면 세상 모든 자식이 자신을 낳아주시고 갖은 희생 다 바쳐 금이야 옥이야 길러주신 부모님 슬하의 자식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 열세 가지를 적어놓았는데 내용을 보아하니 자식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을 세상에 낳아주신 부모님께 성을 다 하여 효도한다 한들 부(父), 어릴 적 다 낡은 헌 수건 조각으로 흐르는 콧물 한 번 닦아주신 은공조차 갚지 못하며 모(母), 비록 한 육신이지만 두 영혼이 되어 열 달 동안 배속에 넣어 어찌하면 다칠세라 어찌하면 편할세라 갖은 은공 다 바쳐 길러주시다가 무심코 옆구리에 낀 채 개울 하나 건네주셨던 그 작은 은공조차 갚았다. 입으로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세상에 부모라는 이름표를 다신 모든 분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효설인용서식(孝說引用書式)의 내용은 이러하다. 『제1단은 자기를 낳은 부모의 은혜를 해설하고 제2단은 길러준 부모의 공덕, 제3단은 부모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은혜, 제4단은 자식이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다. 또 제5단은 자식을 가르치는 도리와 부모를 섬기는 도리, 제6단은 부모를 섬기는 길(道), 제7단은 가난한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 제8단은 노약해진 부모를 섬기는 도리, 제9단은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예절, 제10단은 돌아가신 부모를 잊지 못하는 뜻, 제11단은 부모의 혼령이 언제나 자신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마음가짐, 제12단은 부모와 자신 사이에 정통하는 정기가 감돌고 있다는 사실, 제13단은 설령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순(舜)임금과 같은 큰 효성을 본받아야 된다는 자식의 도리』를 해설하고 있다. 이 효설인용서식(孝說引用書式)을 살펴보더라도 세상 자식들이 부모님께 드려야 할 효성과 도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도를 넘을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본의든 본의 아니든 함께 이웃하며 생활해야 하는 뭇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에 의해 총칼 없이 상처를 입어 아파하기 마련인데 나 역시 나약한 인간이자 날 낳아주신 부모님의 자식이기에 자식 된 처지에서 도리를 다 못했었고 효도를 하려니 효도할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는 말처럼 이젠 처지에 걸맞게 효도하려니 효도를 받아주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이 또한,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상처 난 부위에 왕소금을 뿌려 더욱 아파하는 통에 상처에 딱지가 앉을 만하면 어느새 찾아와 그 상처 위 딱지를 떼고 또 다시 소금을 뿌려놓고 달아나는 매년 오월이 오면 정말 기억하기 싫은 모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가슴이 아프다. 그 상처는 어린 시절 매년 오월 팔일 어버이날이면 또래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 나름대로 솜씨를 뽐내며 만든 빨간 카네이션이나 문방구에서 사온 꽃을 손수 부모님 가슴에 길러주신 은공을 되새기며 달아드리곤 하는데 난 마음은 꿀떡 같으나 사지가 성치 못하니 손수 카네이션을 정성 들여 만들 수도 가게로 달려가 꽃을 사서 날 낳아 기르시느라 시뻘겋게 멍이 든 부모님 가슴에 손수 달아 드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살 아래 누이동생이 내 몫의 카네이션까지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려야 했고 나의 어린 가슴에는 또 하나의 아픈 상처의 딱지가 두껍게 내려앉곤 했었다.
세월은 유수처럼 내 허락도 받지 않은 채 곁을 떠났고 부모님 또한 보내드릴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홀연히 떠나가신 지금 인간을 창조하신 신께서 내게 성한 사지를 내리신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내 가슴에 닥지닥지 앉은 마음의 상처는 감히 누구도 치유시킬 수 없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영전에 미물(微物)만한 속죄를 바치는 뜻에서 비록 모양도 향기도 없다 할지라도 남은 삶 동안 불효의 아픔에 불이 타고 하얗게 재로 남은 나의 가슴에 하얀 카네이션을 달아볼 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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