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연중 제15주일(야곱의 우물)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 영혼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좋은 땅이 되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마태오가 13장에 모아놓은 하늘나라의 비유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전달 방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과 허락되지 않은 사람’ 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10 – 14절)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무딘 마음, 제대로 듣지 못하는 귀, 눈이 있지만 감아버려 보지 못하는 이들’ 이 경계하고 깨어나 참으로 듣고 보고 더 받아 넉넉해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메시지가 비유에 내포된 것은 아닐까요 ?
오늘 말씀에서 우리와는 다른 이스라엘의 경작법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우기 (11월초) 가 시작되면 먼저 땅에 씨를 뿌린 후 밭을 갈고 흙으로 덮습니다. 농한기의 밭은 사람들이 가로질러 다녀 가름길이 생기고, 가시덤불이 자랄 뿐 아니라 유난히 돌이 많은 박토입니다. 이런 밭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3ㄴ절) 씨를 뿌리는데 그 씨앗이 어떤 토양에 떨어졌느냐에 따라 수확의 결실을 달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씨 뿌리는 사람의 성공 여부는 곧 토양과 씨의 관계에서 가늠됩니다.
1. 씨 뿌리는 사람
농부가 뿌린 씨는 ‘길, 돌밭, 가시덤불 속’ 그리고 ‘좋은 땅’ 에 떨어졌습니다. (4 – 9절)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씨” (4절) 가 싹도 내보지 못하고 완전히 실패했다면, ‘돌밭’ 에 떨어져 싹이 돋아났지만 말라버린 것은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5 – 6절) ‘뿌리가 없다.’ 는 것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으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로서, 돌밭은 불임을 상징합니다. (집회 40, 15 참조)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렸습니다.” (7절) 가시덤불로 인해 씨앗이 죽어버려 더 이상의 결실을 기대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의 열매가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 (8절) 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 겪은 실패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수확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마르코복음에서는 씨앗의 열매를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 로 표현하여 성공의 도가 점점 더 증가함을 나타냅니다. (마르 4, 8ㄴ) 길가,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농부의 의기를 꺾을 만한 것이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리라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열매 맺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동터온 하느님 나라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실현되리라는 사실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2. 토양과 씨
씨 뿌리는 사람의 우의적 해석 (18 – 23절) 에서 씨는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 (19ㄴ절) 이며, 토양은 그 말씀을 듣는 청중입니다. 토양은 네 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대변되는데 ①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 (18-19절) ②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쁘게 응답하지만 믿음의 뿌리가 없는 사람 (20-21절) ③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지만 세상에 매여 성숙한 신앙생활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 (22절)④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열매 맺는 사람 (23ㄴ절) 입니다.
신앙의 열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19ㄱ. 23절) 데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많이 들었다는 것이 곧 신앙은 아니며,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음의 열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들었지만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 곧 세상의 유혹이 마음 안에서 말씀을 흩어버려 말씀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19절) 그뿐만 아니라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해도 믿음의 뿌리가 하느님이 아닌 나 자신에게 내릴 때 말씀은 쉽게 시련이나 탐욕의 숲에 눌려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너희는 행복하다.’ 고 행복선언을 하십니다. (16절) 참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 열려 있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 맺는 ‘좋은 땅’ 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절)
묵상 (Meditatio)
“그는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23ㄴ절) ‘듣고 깨닫는 것’ 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요 ? 문득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느님께 청했던 지혜의 왕, 솔로몬이 떠오릅니다. (1열왕 3, 9) 우리의 삶 안에서 ‘듣는 마음’ 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영혼은 길가, 돌밭, 가시덤불 속을 모면할 길이 없겠지요. 깨달음은 듣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길가의 완고함을 갈아엎어 유혹과 탐욕의 가시덤불을 거두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듣는 마음’ 은 그 폭과 깊이가 얼마나 될까 묵상해 봅니다.
기도 (Oratio)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정의의 놀라운 행적으로 저희에게 응답하십니다. (시편 65, 6)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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